(다소 긴 글이라도 재즈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올리는 '재즈에 대하여' 시리즈입니다.)
90년대 여성 재즈보컬리스트에 대하여
97년 하반기에 폭발적으로 쏟아진 여성 재즈 보컬 앨범의 비교, 분석을 통해, 90년대 이후 만개하고 있는 여성 재즈 보컬에 대해 알아보자.
해마다 가을이 되면 많은 레코딩이 쏟아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97년 가을에 출반된 여성 재즈 보컬 신작 앨범은 가히 '홍수 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집중적으로 쏟아졌다.
지난 9월 게이코 리, 헬렌 메릴을 필두로 10월에 다이아나 크랠, 카산드라 월슨, 디디 브리지워터, 엘리안 엘리아스, 로라피기, 그리고 11월 발매될 흘리 콜, 로산나 비트누 다이앤 리브스외 새로운 앨범에 이르기까지‥‥ 아티스트 개인의 년간 앨범 발매량이 평균 1매 임을 감안한다면, 올 하반기에 일시에 우리 곁을 방문하고 있는 여성 재즈 보컬 앨범은 한해의 여성 재즈보컬이 한꺼번에 몰린 듯 하여 놀라움은 더해진 다. 더구나 과거의 영광과 신화를 재현하고 있는 여성 보컬의 완연한 성숙기에서 이들의 활약상을 지켜봄에 그 의미는 더욱 큰 부피로 느껴진다.
본 란에서는 97년 하반기 재즈 시장에 대거 등장한 여성 보컬들의 신작 앨범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협의로는 97년 여성 재즈 보컬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광의로는 90년대 이후 화려하게 만개하고 있는 여성 재즈 보컬의 새로운 전성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90년대 여성 재즈 보럴의 새로운 화두
정체와 매너리즘을 죄악시했던 선각자들의 창조와 실험을 통해 재즈의 진보와 다양성은 촉진되어 왔다. 더불어 이런 격변의 시기마다 '창조냐 ? 이단이냐 ?' 로 양분되는 찬반 논쟁은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모험이
후세에 이르러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하는 과정을 무수히 지켜봤던 오늘날의 재즈 팬들은 지 난 100여년의 재즈 역사가 잉태해 온 무수한 논쟁거리 앞에 너그러운 이해로 다가서고, 또한 다양한 담론(談論)을 준비해 두고 있다.
가히 '신드롬' 이라 불릴 만큼 커다란 돌풍을 일으키며 90년대 대중 문화로 진입했던 '재즈를 이후국내에도 재즈의
저변이 확대되고, 일찌감치 장르에 대한 편견과 다양한 음악적 견해에 폭넓은 이해가 마련되고 있었다. 빅 밴드에서 프리 재즈, 퓨전과 애시드까지 다양한 음악관이 존중되는 국내 재즈 환경에서 좀처럼 위의 관용과 수용의 자세가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 있다.
재즈 보컬, 그 중에서도 여성 재즈보컬에 대해서는 마치 공식화된 주장들이 오랫동안 지배해왔었다. 그 내용들은
첫 째 "빌리 할리데이, 엘라가 무대를 떠남에 따라 여성 재즈 보컬은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 다음으로 "여성 재즈 보컬의 진수는 화려한 스캣과 열정적인 가창력에 있다. 따라서 진장한 재즈보컬은 트래디셔널한 재즈 창법을 보유하고 있는 흑인여성 보컬이다. " 셋째는 "음악성은 뒤로 미룬 채 섹시한 미모만을 앞세운 백인 여성 보컬(Blonde Vocal)은 얄팍한 상품성으로 위장된 저급한 음악이다."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런 편협한 논리는 국내 재즈 팬들이 재즈로 유입되는 가장 보편적인 경로가 여성 재즈 보컬이며, 그들 손에 처음
닿은 텍스트가 빌리, 엘라, 새시로 대표되는 혹인 정통 재즈 보컬이었기 때문에 형성된 것인지도 모른다. 팝의 언어에 친숙해 있던 미지의 재즈 팬들은 혹인 여성 보컬의 정수(精體)를 접하고 이내 재즈의 매력에 도취되었고, 팝과의
커다란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는 백인 여성 보컬을 폄하하고 있었다. 때문에 아직 고양되지 않은 국내 재즈의 여건에서 오랫동안 다수의 보컬 팬들 사이에서 철칙처럼 유지되어온 화두(話頭)는 '3대 여성 재즈 보컬인 빌리 할리데이,
엘라 피츠제랄드, 사라 본의 우열을 논하는 것' 이었다.
그러나 공고한 벽처럼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여성 재즈 보컬에 대한 지독한 향수병은 최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여성 보컬의 개화(開花) 속에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이와 함께 언제부터인가 재즈 보컬 매니아와 처음 재즈를
접하는 초심자들에게 탄생한 새로운 화두는 '새로운 재즈 보컬의 여신 카산드라 월슨, 다이앤 리브스, 디디 브리지워터의 음악성에 대해 논하는 것' 으로 대체되었다. 늘 재즈 보컬이 가장 사랑받던 시절에 잠겨 변화의 물결과 새로움의 출현을 애써 외면해 온 이들도 이제 귀를 열고 오늘의 소리와 얼굴에 관심을 옮기고 있다.
97년 하반기에 쏟아진 여성 보컬 러시
97년 여성 재즈 보컬 중 하반기 (9월 기준) 이전에 국내에 소개된 재즈 앨범을 언급한다면 클레어 마틴의
(Make This City Outs)와 다이엔 슈어의 (Blues for Schur) 정도이다. 그마저도 두 앨범의 레코딩 연도는 1996년이며, 클레어 마틴은 국내에 거의 인지가 없는 영국에서만 활동하는 여성 보컬리스트이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97년의 9-11월 사이에 쏟아진 앨범들에 대한 분석이 곧 97년 한 해의 평가에 다름 아니라'
라는 논리는 단순한 억측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국내에 수입 및 발매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앨범들을 나열해 보자.
9월 게이코 리 (Beautiful Love), 헬렌 메릴 (You and The Night and Music). 10월 카산드라 월슨 (Rendezvous), 디디 브리지워터 (Dear Ella), 다이아나 크랠 (Love Scenes), 엘리안 엘리아스 (The Three Americas), 로라 피기의 (Watch What Happened). 11월 흘리 콜 (Dark Dear Heart), 로산나 비트로 (The Music of Ray Charles), 다이앤 리브스 (That Day) .
새로운 전성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한 해 동안 차곡 차곡 모아 두었던 댐 안의 물이 일시에 수문을 통해 쏟아지듯 97년 하반기에 발매된 여성 재즈 보컬 앨범의 러쉬(Rush)는 재즈 보컬이 닿는 전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빛어 지는
현상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함유한 이 앨범들의 비교와 분석에는 획일화된 관점에서 논할 수는 없다. 때문에 아티스트의 음악적 유형. 앨범의 성격에 의해 카테고리(Category)를 설정하고 그 범주에 해당하는 비교 분석 틀을 마련하여 개별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여성 재즈 보컬의 주류(主流)라 칭할 수 있는 흑인 여성 재즈 보컬에서는 메인스트림으로서의 정통성과 그들이 현 시대에 차지하는 위상에의 충족 여부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감성으로 재즈 보컬의 매력을
설파하고 있는 백인 여성 재즈 보컬 영역에서는 대중적인 매력, 그동안의 아쉬움으로 지적되었던 음악적인 평가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재즈와 팝의 감각을 혼용하고 있는 Besides 재즈 보컬 부문에서는 각 앨범이
기한 컨셉에의 충실도를 중심으로 언급하기로 한다.
정통 흑인 여성 재즈 보컬
재즈 보컬의 디양성과 시대성을 인정하더라도 핵심이 화려한 스캣과 열정적인 창법으로 인간의 소리를 악기화
시켰던 정통 흑인 여성 보컬임은 불변의 사실이다(여기에서 '흑인'이란 제한은 인종적 특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다만 트래디셔널한 재즈 보컬의 창법에 근접한 백인 여성 보컬은 거의 없었다). 빌리 할리데이, 사라본, 카르멘 맥레, 엘라 피츠제랄드의 사망 이후 90년대 재즈 씬에서 정통 재즈 보결의 맥(脈)을 이어가고 있는 주역은 최근 신작을
경쟁적으로 발표한 카산드라 월슨, 다이앤 리브스, 디디 브리지 워터를 먼저 떠올릴 수 있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일찌감치 90년대 재즈 보컬의 여왕으로 낙점 받은 카산드라 월슨은
화려한 고음 처리로 대표되던 종래의 양의에서 벗어나, 내면 깊숙한 감정을 중성적인 콘트랄토로 끌어내는 독창성을 과시해 왔으며, 이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킨 보컬스타일리스트로 그녀의 지위를 마련해 주었다. 재키 테라슨과
함께 일군 신작 (Rendezvous)에서는 아프리칸 블랙 뮤직에의 추구가 짙었던종래의 무거움을 벗고, 널리 알려진
스탠더드송에 직선적인 해석, 대중적인 감성으로 다가서고 있는 변모된 모습이 내비쳤다. 베티 카터나 최근 그녀에게 많은 감화를 안겨준 조니 미첼의 영향이 짙은 그녀의 변신은 M-Base라는 지협적인 공간에서 탈피하여, 명실상부한 90년대의 신화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이었다.
90년대 버브로 이적한 후 정통 재즈 보컬의 뿌리 찾기에 매진해 온 현존 최고의 스캣 싱어 디디 브리지워터는 자신에게 음악적 세례를 남겼던 엘라 퍼츠제랄드에게 바치는 첫 추모 앨범(Dear Ella)를 발표했다. 디디는 엘라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던 노장들과의 호흡에서 완벽한 엘라의 재창조를 일구어 내었다. 그녀의 엘라 해석 작업이 라인 업의 화려함에 끌려 다니지 않고, 분명한 자신의 관점에 의해 실현됨으로써, 가장 엘라와 닮아 있으면서 가장 창조적인
해석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세계 청년의 날 미사 기념 앨범에서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만나 'I Believe'를부르며
폭넓은 활약을 펼치고 있음에 그녀에게로 향하는 시선이 보다 뜨거워져야 할 필요가 생겼다.
지난 8월 '97 무주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여 국내에서 가장 폭넓은 지명도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다이앤 리브스도 (The Grand Encounter) 이후 새롭게 선보이는 신작 (That Day)의 발매를 눈 앞에 두고 있다. "내가 직접 가사를
붙인 노래에 더욱 애정을 느낀다"라는 스스로의 표현처럼 자신의 노래에 많은 작사를 남겼던 다이앤 리브스. 그런
탓인지 그녀의 노래는 한 편의 시를 읖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그녀의 작사에 대한 애정은 신작에서도 여실히 반영된다. 그녀가 1년여의 시간을 투자하며 심혈을 기울인 앨범의 컨셉은 '재즈 스탠더드와 음미 시와의 해우 라는
신선함이 다. 때문에 특유의 활화산 같은 가창을 잠시 가다듬고 억제된 열정으로 곡의 이미지를 차분한 실에 담아
은밀하게 전하는데 치중했다. 더불어 신작에서는 새롭게 캐롤 킹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으며, 다채로운 변환과 풍부한 곡의 정감이 담긴 수록곡 마다에 가득배인 아름다움에 (That Day)는 97년의 마지막을 뜨겁게 장식할 앨범으로 첫
손에 꼽힌다.
디바의 명예에 걸맞는 활약으로 90년대 여성보컬의 새로운 개화기를 열어 주었던 세 명의 주역, 카산드라월슨,
디디 브리지워터, 다이앤 리브스는 하나 뿐인 여왕의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새로운 사운드의
창조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세 사람의 성실하고도 진중한 자세에서 우린 오늘의 풍요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백인 여성 재즈 보컬
전제해 둘 것은 60년대 '블론디 여성 보컬' 과 본 장의 분류에 이용되는 '백인 여성 재즈 보컬'은 동일한 의미로 해석되지 않음이다. 5-60년대 정통 재즈 보컬의 이면(異面)에 존재했던 블론디 재즈 보컬(Blonde Jazz Vocal)은 어떤 의미에서 당시에만 유지된 고유한 장르로서, 섹시한 미모와 분위기를 내세워 무드 음악적인 요소가 짙었다. 그들의
음악을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 본다면, 음악성 보다는 음악 외적인 요소가 오히려 주(主)였음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현 시대의 백인 여성 보컬은 종래의 블론디 보컬과는 구분되는 음악 자체의 진지함을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간에 논란의 대상이었던 백인 여성 보컬의 음악적 경박함을 오늘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현
시대 백인 여성 보컬의 주역들 역시 한결같이 아름다운 용모를 자랑하고 있지만, 이것이 음악적 홀대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5-60년대의 번영기 이후 백인 여성 재즈 보컬은 음악적 정체성의 부재(不在)로 팬들의 외면을 받았으며, 더 이상의
새로운 스타를 생산하지 못했다. 정통 재즈 보컬에 더욱 근접해 있던 헬렌 메릴만이 세월의 흐름에 관계없이 근근이 그 매력을 전할뿐이었다. 혹인 여성 재즈보컬의 변화의 흐름들이 90년대 초부터 일기 시작했다면 백인여성 재즈보컬의 변화와 세대 교체의 바람은 90년대 중반에 와서 뒤늦게 마련되기 시작했다.
의기소침해 있던 백인 여성 재즈 보컬에 새로운 활력을 제공한 이는 다이아나 크랠이었다. 그녀가 지난해 냇 킹 콜
헌정 앨범 (All for You)로 시장을 잠식함에(이 앨범은 빌보드 재즈 차트에 70주간 머물렀다) 백인 여성 재즈 보컬은 다시 한번 가장 확실한 상품으로 대두되었다. 이런 중흥의 기운을 이끌었던 다이아나 크랠은 최근 전 작의 성공을
잇는 (Love Scenes)를 발표하여 재차 팬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있다. 자신의 오늘이 있기까지의 회상을 곡마다에
담아 앨범에는 그녀의 섬세한 감성과 성숙해진 표현력으로 색칠된 이미지가 가득하였다.
다이아나 크랠의 등장 이전에 백인 여성 재즈보컬의 기대주로 관심을 모았던 엘리안 엘리아스도 신작 (The Three Americas)에서 빼앗긴 긴 조명을 자신에게로 다시 옮겨오려는 듯 의욕을 불태웠다. 그러나 남,북미의 음악을
어우르겠다는 당초의 뜻한 바는 욕심이 너무 커서인지 산만하게 흩어진 음악이 나열되는 범작(凡作)에 그치고 말았다.
비록 목표에 만족할 만한 결실을 누리진 못해 아쉬움은 남지만, 브라질 출신다운 리듬감과 산뜻한 멜로디의 연출
능력으로 그녀에게로 향하는 기대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재일 교포 3세 게이코 리도 정통 재즈 보컬적 접근이었던 전작의 스타일에서 일신하며, 신작(Beautiful Lee)에서는 감성에 호소하는 백인 여성 보컬의 전형성을 강조하여 본 범주에 포함 될 수 있다. 그녀는 흥내내기의 성격이 짙었던 전작의 어울리지 않은 옷을 벗고, 자신에게 적절히 어울리는 자기 색깔을 찾아 러브 송 발라드의 해석을 아름답고
신비로움으로 소화해 냈다. 그리고 앨범에서 과시되었던 절제된 스윙감과 감상자의 가슴에 안은하게 맺히는 매혹적인 음성은 이후 그녀가 세계를 무대로 능동적인 활약을 펼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짐작케 해 주었다.
백인 여성 보컬의 살아있는 역사 헬렌 메릴도 후배들의 능동적인 활약에 뒤질세라 최근의 공백을 딛고 새로운 앨범 (You and The Night and Music)을 발매하였다. 전성기에 비해 다소 힘은 떨어진 듯 하지만 지나온 세월에서
비롯된 경륜과 노련함으로 음악을 자연스럽게 다스리는 원숙미는 뻗어 나가는 후진들에게 뚜렷한 귀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5-60년대 여성 재즈 보컬의 절정기를 몸소 일구었던 헬렌 메릴의 존재 감은 과거와 오늘의 가교를 메우는
정신적 지주로써, 새로운 신화 창조를 뒷받침한다.
90년대 백인 여성 재즈 보컬의 중요한 특성중 하나는 그들이 보컬 이외에 기악에도 남다른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이아나 크랠과 엘리안 엘리아스는 자신의 앨범에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약을 겸하고 있으며,
게이코 리의 음악적 출발도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이들의 기악에의 능력은 단순히 '서비스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앨범에서 한 명의 걸출한 솔리스트로서의 역할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는 '노래를 부르는
아름다운 마네킹' 이라는 비난도 받았던 종래의 백인 재즈 보컬에 대한 평가를 음악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곁들이고 있는 오늘의 백인 여성 재즈 보컬 군(群)에게 적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Besides Female Jazz Vocal
다소 애매한 개념이긴 하지만, 이 범주에 묶이는 보컬리스트의 음악적 성향 자체가 다소의 모호함을 지니고 있다.
음악적 스타일상 정통 재즈보컬에 포함되지 못하고, 백인이면서도 전술한 백인 재즈 보컬에도 속하지 않은 홀리 콜, 로라 피기, 로산나 비트로 등은 팝-재즈의 경계에 위치하지만 음악적 뿌리는 재즈에 있다는 점에서 이 카테고리에
속하고 있다. 굳이 이들을 일반적으로 평하는 Beyond Jazz Vocal로 칭하지 않은 이유는 조니 미첼, 리키 킬 존구
시나 이스턴으로 대표되는 팝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재즈를 공략하는 유형과의 구분을 위해서이다.
우선 이들의 음악성은 전술한 백인 여성 재즈보컬과 다소의 차이점을 보인다. 이 구분의 기준은 그들 음악에 차지하고 있는 재즈적인 색채의 함유 정도이다. 전자가 상대적으로 재즈 본연의 표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면 후자는 팝적인
색채가 보다 짙게 반영되어 있다.
97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앨범 (Bewitched)의 주인공 로라 피기는 이런 전형성에가장 근접해 있는
보컬리스트이다. 그녀의 음색은 재즈 보컬의 고유한 감상 기준으로 대하면 특유의 고혹적인 맛깔스러움은 퇴색되어 버리는데, 국내에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킨 (Bewitched)의 인기 또한 비 재즈적인 요소가 오히려 팬들에게 어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대중적인 환영에도 불구하고 재즈 보컬리스트로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로라 피기는 자신이 오랫동안 경애해 마지않던 프랑스의 재즈-영화 음악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미쉘 르그랑과의 협연(Watch What Happened)에서는 재즈 본연의 어법에 가깝게 다가서고 있다. 그러나 밋밋하게 흘러가는 리듬과 멜로디, 미디엄,
슬로 템포 일색의 밋밋한 구성력, 그리고 미쉘 르그랑과의 교감도 부자연스러워 마치 하나의 이벤트로 그친 듯한
아쉬움을 남겼다.
로라 피기가 고혹적인 보이스와 요염한 무드로 중년 남성을 공략하고 있다면, 흘리 콜은 새로운 감각의 세대에
호소하고 있다. 전작 (Temptapion)에서 도발적이고 반항적인 이미지로 톰 웨이츠를 완벽하게 재해석하며 장르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펼쳐 온 흘리 콜은 신작 (Dark Dear Heart)에서는 비틀즈, 쉐릴 크로우.
조니 미첼 등의 곡들을 담아 마치 모던 록 보컬리스트로 변신한 듯한 느낌을 강하게 제시하였다. 그녀는 (Dark Dear Heart)를 통해서 재즈를 버린 것이 아닌, 새로운 재즈와 팝의 만남을 빌려 자신의 표현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더구나 그 시도가 음악적 완성도를 완연하게 확보하고 있음은 그녀에게 부여된 대안의 재즈 싱어 (Alternative Jazz Singer)라는 찬사가 타당함을 전해 준다.
다운 비트 지(紙)로부터 "엘라와 사라, 그리고 아레사 프랭클린의 장점을 겸비한 기대주'라는 찬사를 받았던 로산나
비트로는 최근 레이 찰스에게 바치는 헌정의 노래(Catching Some Ray Charles)를 발표했다. 레이 찰스의 블루스에 도전하고 있는 로산나 비트로의 용기와 R&B의 뿌리를 현대에 접목시키고자 했던 의도는 높이 살 만 하지만,
과다한 감정 표출로 원곡의 약동감 넘치는 리듬감을 충분히 재현하지 못해 그 성과를 다하지 못했다 "여성 재즈
보컬의 새로운 전성기" 이 명제의 성립은 최근 쏟아진 여성 재즈 보컬 앨범의 풍성한 양(量)적인 풍성함에 기인한
것만은 아니다.
그 작품의 주인공들이 90년대 여성 보컬의 주역으로 한결같이 대중들에게 뜨거운 환영을 받고 있으며, 지난날의
영광을 훌륭하게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는 질(質)적인 풍요로움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풍요의 시대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작품도 함께 양산되는 것도 피할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경쟁과 공조의 관계에서 보다
많은 작품, 보다 우수한 내용이 확보피고, 그리고 기존의 풍요에 더욱 자극을 안겨주는 신인의 출현이 필연적으로
수확될 것이라 기대된다.
무엇보다도 반가운 사실은 침제된 재즈 시장에 가장 대중적인 파급성을 지니고 있는 여성 재즈 보컬의 만개로 재즈
보컬은 물론, 재즈자체의 관심이 증대되고 있음이다. 또한 그동안 빌리, 엘라, 사라로 대표되는 지난 시절의 향수에
젖어 있던 이들이 오늘의 소리에 귀를 열게 되었다는 사실은 더욱 절실한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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