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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재즈에 대하여 3.- 김진묵의 재즈이야기 `이상한 과일` 중에서

mistyblue 2012. 3. 29. 21:38

 

 

김진묵의 재즈이야기 '이상한 과일'

 

 

재즈는 감미롭고 경쾌하면서도 처연한 삶의 진실을 담고 있다. 그 삶의 진실은 아프리카 밀림의 야성에서 나온다. 우리가 재즈를 들으며 경험하는 다양한 것은 바로 소외된 계층의 아픔, 문명에 대한 분노이다. 때로는 재즈를 들으며 깊은 안식에 빠지고 아름다움을 경험한다.


 재즈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재즈는 결코 어렵지 않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대하면 우리 귀에 순수한 재즈의 소리가 들려온다. 이 때문에 재즈를 직관으로 듣는 음악이라고하는 것이다.

 

 철저히 소외된 계층, 노예. 그들의 소박한 즐거움을 투영한 것이 바로 재즈이다. 우리는 이러한 재즈를 들으며 사랑과 아픔을 이야기한다. 재즈는 행복이다.


 재즈는 수많은 음악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재즈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른 음악과는 다르다. 예를 들어 재즈는 인간의 감성을 수단과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최상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클래식 음악과는 출발부터 다르다. 우리는 재즈를 들으면서 삶의 즐거움과 열정, 우울과 분노 등을 음악에 이입하면서 재즈라는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음악이 재즈다.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면 재즈도 이해할 수 없다. 아직도 아픔을 겪는 사람이 많다. 그러기에 재즈는 여전히 우리에게 강한 호소력으로 파고든다.


 재즈는 무드음악이며, 그 자체가 휴식을 의미한다. 혹독한 일을 견뎌 내야 했던 흑인 노예가 누린 자유는 딱 한 가지, 휴식시간에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했던 그들은 이러한 휴식시간에 구슬픈 노래로 자신의 처지를 달랬다. 이것이 후에 영가(靈歌)가 되고 블루스가 되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트럼펫 연주를 끝내고 관중들에게 능청스러운 농담을 건네고 폭소가 터진다. 디지 길레스피는 트럼펫을 불 때면 볼이 눈밑까지 부풀어 올라 우스꽝스러운데다가 구부러진 트럼펫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다. 디지(dizzy)라는 별명도 그의 엉뚱한 장난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이렇듯 재즈에는 유머가 있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악이기에 재즈에서 유머는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초기의 재즈 연주가들에게는 연주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고 한다. 루이 암스트롱은 미국의 국보급으로 성장했지만 스스로 예술가이기를 거부하고 연예인이기를 고집하였다. 그래서인지 예술가로서는 발휘할 수 없는 유머가 그의 음악에는 살아 있다.

 

 세월이 흐르고 재즈의 예술성이 더해 감에 따라 이러한 재즈의 경향에 반감을 갖는 음악인도 생겨났지만 결국 이러한 현상도 광대였던 선배 음악인의 비애를 대변하는 반작용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소외된 계층, 아픔을 겪는 이.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색하면서 얻은 자아 의식은 기존 세계에 대한 반항으로 나타난다. 재즈는 그 반항의 한 단면이다. 아픔에서 시작된 재즈에는 사색이 있다. 이 사색은 생명의 소중함을 자각하게 하고, 자각은 개인적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 결과 기존 체제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되어 신음과 절규로 나타난다. 재즈의 본질은 바로 이 신음과 절규이다. 열기는 생명에 대한 긍정이고, 즉흥 연주는 개인적 삶의 표현이다. 유머와 냉소는 기존 체제의 부정이다.

재즈는 1990년대에 와서야 우리 나라 대중 사이에 확산되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음악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그러나 재즈는 ‘서양 우월주의’, 백인의 지배 논리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음악이라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된다. 흑인 베이시스트 찰스 밍거스는 “검은 것은 아름답다”며 검은 피부의 자부심을 음악으로 나타내었다. 그는 백인을 경멸했고 흑인만이 표현할 수 있는 미학을 보여 주었다.


 교회 중심 사회였던 유럽에서 음악은 신을 찬양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많은 음악이 신의 경건함과 위대함을 찬양하려고 만들어졌다. 신의 제단에 바치는 음악은 더욱 세련되고, 우아하고, 지고한 아름다움을 담아야만 했다. 순수를 위해 음악을 정제하였고, 원시성을 배제하였다. 원시성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프리카 인은 다른 각도에서 음악을 보았다. 그들에게 음악은 원시적 생명력을 나타내는 도구였다. 신을 위한 음악이 아닌 인간을 위한 음악이야말로 그들이 생각하는 진정한 음악이었으며 그것 자체가 삶의 방식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맥박과 호흡에 따라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었다.

 

 이렇게 유럽 인과 아프리카 인이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다. 관점이 다르니 자연스레 음악도 달라지게 된다. 서양음악에서는 강박이 우선하지만 아프리카 음악에서는 약박이 우선이다. 강박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음악은 안정적이지만 약박을 우선으로 하는 아프리카 음악은 왠지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이 불안정함은 바로 스윙(swing)이며, 재즈가 바로 이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불안정한 느낌이 그들의 삶을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재즈는 탄생과 동시에 대중의 큰 지지를 받으며 대중음악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형성했다. 재즈가 지닌 상징성은 모든 음악적 요소의 수용성, 직관에 의한 즉흥성, 도발적인 감정 노출 등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다. 재즈는 이렇듯 그간 사랑받던 음악에 비하여 대단히 이질적이었지만 대중은 거부감없이 이를 받아들이고 환영했다.

 

 재즈의 속성인 열정과 관능미는 때로는 원시적이며 점잖지 못하기도 하지만 무한한 자유와 싱싱한 생명력을 지니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


 재즈는 수용성이 강한 음악이다. 탄생 자체가 흑인 음악과 백인 음악이 혼합하여 이루어졌다. 서로 다른 음악이 섞여 나타난 새로운 음악 형태가 재즈이다.

 

 재즈는 본질적으로 크로스오버(crossover) 성향을 지닌다.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크로스오버 음악은 클래식 요소와 재즈 요소가 혼합된 음악을 말한다. 이는 하나의 표현 수법이지만 사실 재즈적인 발상에서 비롯한 것이다. 재즈는 어떤 음악 문화를 만나더라도 포용력을 발휘한다. 다양한 문화와 접하면서 새로운 모습을 띤다. 그래서 재즈의 사조는 주기가 짧다.

 

 재즈의 원류인 아프리카 음악도 지속적으로 재즈에 영향을 준다. 재즈가 리듬에 중점을 두는 음악이기에, 원시적 생명력이 살아 있는 아프리카 리듬은 많은 흑인 음악인의 관심 대상이 된다. 20새기 후반, 세계성을 획득하고 각국에서 사랑받게 된 재즈는 이제 다양한 민속적 요소를 수용하고 있다.

 

 재즈의 무차별한 포용력 가운데 록 뮤직과의 혼합은 아주 특이한 일로 기록된다. 록 뮤직은 재즈에서 갈라진 지류인데 그 요소를 다시 받아들인 것이다. 바로 젊은 층에서 선호하는 퓨전재즈이다. 퓨전 재즈는 록 뮤직이 재즈의 지류로서 나름대로 성장했듯이 재즈의 한 지류로 다시금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퓨전은 또다시 정통 재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재즈는 형식미에 집착하지 않는다. 재즈에서는 변주곡 형식과 가요 형식 등 단순한 형식이 사용된다. 클래식 미학 가운데 형식미가 가장 우위에 있음을 보면, 형식에 대한 재즈의 무감각은 이상할 정도다.

 

 재즈 아티스트는 직관에 따른 몰입 상태에서 연주에 빠져든다. 이성이나 사고보다는 영감과 열정으로 음악이 이루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냉철한 계산으로 형식미를 추구하기란 불가능하다. 형식미를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순간적인 충실함에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


 재즈는 신나는 음악이다. 열정과 몰입, 끈적끈적한 인간관계가 있다. 단순히 예술적 감상만으로 재즈를 향유하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예술적 감동 외에 연주자와 청중 사이에 공감대가 이루어질 때 진정한 재즈의 맛이 살아난다. 이 공감대를 통한 정신적 교류로 더없이 멋진 예술로 승화한다. 이른바 상호작용(interplay)이다.

 

 연주자에게 인터플레이는 대단히 중요하다. 무대의 진지함은 청중에게 전달되고 청중의 열기는 무대 위의 연주자에게로 돌아간다. 이러한 파형이 반복되면서 연주자와 청중은 재즈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재즈는 한 주제를 정해진 질서에 따라 즉흥적으로 변형시켜 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한 사람의 즉흥 연주가 끝나면 다른 사람이 이어받아 즉흥 연주를 펼친다. 이 때 개인의 직관, 기량, 감성, 성격, 취향, 교육적 배경 등 연주자의 모든 것이 나타난다. 이 ‘모든 것'이 모여 재즈라는 음악 체계를 구성한다.

 

 진정한 재즈의 매력은 개성과 협력에서 나온다. 재즈를 통해 민주주의의 이상을 본다. 재즈에서 질서는 통제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로움을 위한 것이다. 자유로움을 위한 질서는 아름답다.


 아프리카에서 남획당하고 강제노동, 남북전쟁, 노예 해방을 거친 후 도시 빈민이 되기까지 흑인의 모든 운명은 백인의 정치와 경제논리로 결정되었다. 흑인의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들이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재즈와 블루스의 탄생뿐인데, 고통의 산물인 블루스와 재즈가 이토록 아름답다니 경이롭다.


 1930년대 말, 백인 여러 명이 흑인 청년을 집단 구타하고 나무에 목매달았다. 이 사건을 목도한 흑인 청년 루이스 알렌은 이에 대해 시를 쓰고 곡을 붙였다.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흑인의 시체를 이상한 과일에 비유하여 노래한 것이다.

 

 이 시는 많은 사람에게 폭력에 대한 분노를 일으켰고, 흑인은 물론 많은 지성인에게 백인의 폭력을 고발했다. 단순한 인종차별의 차원을 넘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약한 자에 대한 폭력을 고발한 것이다. 빌리 홀리데이는 이 노래에 깊은 슬픔을 담아 불렀다.

 

 재즈는 단순히 예술성이나 대중적인 인기만을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다. 항상 사회 문제를 직시하고 이슈화하는 힘을 지녔다. 1960년대 미국과 남아프리카에서 일었던 흑인 운동에서도 재즈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우리 사회에 어두운 구석이 존재하는 한 재즈는 사회적 기능을 잃지 않는다.


 재즈에는 선정적인 면도 있다. 클래식 음악에서 천대받는 색소폰이 최고의 재즈 악기로 각광받는 이유는 소리와 모양이 지닌 선정적인 매력 때문이다. ‘순음악’이라는 개념으로 보면 용납하기 어려운 왜곡된 소리, 퇴폐적인 소리가 재즈에서는 독특한 미학으로 다가온다.


 재즈와 영화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1900년대 뤼미에르 형제의 영사기가 발명될 즈음, 미국 남부에서는 재즈의 징후가 싹텄다. 거의 동시에 태어난 재즈와 영화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다른 예술이 지식층이나 일부 계층의 기호에만 호소했던 반면 재즈와 영화는 철저히 대중의 오락으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재즈와 영화는 평범한 우리네 모습, 그 삶의 진실을 담고 있기에 대중으로부터 커다란 지지를 받는 것이다. 대중의 이러한 지지는 기존 미학체계를 흔들 정도로 20세기 예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결국 돈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예술에서도 자본의 위력은 대단하다.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지지도가 클수록 돈이 따르는 냉정한 수요와 공급 원리가 작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대중음악 쪽에서 훨씬 두드러지는데 이 때문에 음악이라는 상품을 팔아 이윤을 극대화 하려는 마케팅 전략이 음악의 내용에까지 관여한다. 이제는 음악이 작곡가나 연주자의 음악성이나 예술 감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담당자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만들어진다.

 재즈도 예외가 아니다. 재즈도 역시 돈에 좌우되는 대중음악이다.


 가톨릭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클래식은 지식인에게 서구적 편향심을 이식하려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 정책의 결과로, 이 땅의 음악을 밀어내고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재즈도 발생초기에 수용한 일본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재즈 음악은 국내 가요에 적용되었고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 사회일각에서 재즈에 대한 자각이 일어 재즈 동호회가 생겨나고 이들은 한국 재즈계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들은 작품세계를 제대로 표현해 내는 뮤지션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 나라 뮤지션 중에 테크닉이 뛰어난 사람들은 많지만 특별한 개성이 있는 사람은 아직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재즈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남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성있는 음악인을 키워 한국의 재즈계가 발전되어야 한다.

 

 재즈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특별하다. 그리고 역시 재즈를 하는 사람들도 특별하다.

 

 “선 라(Sun Ra)"라는 흑인 아티스트는 자신의 고향이 토성이라고 우긴다. 그의 재즈 오케스트라는 아르케스트라(Arkestra)라고 불린다. 노아가 탔던 방주(ark)와 오케스트라를 합성한 단어이다.

 선 라의 음악은 지독한 풍자와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주로 프리 재즈를 연주하지만 정통 수법의 연주도 매우 뛰어나다. 그의 무대는 전위적이며 철학적이다.

 

 어느 세계에나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만 자유를 표방하는 재즈 세계에는 기인이 너무 많다. 그들은 영혼의 자유와 삶의 희열을 위해 순진무구한 삶을 영위한 것이다.

 “찰스 밍거스”는 평생을 기이하게 행동하여 주목받았다. 그는 트리오 악단에서 연주를 하였는데 성공 가도를 달리려던 찰나 잠적했다. 알고 보니 그는 우체국 직원이 되어 있었다. 클럽에서 취객을 상대로 하는 연주로는 예술적 자존심을 지키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트럼펫의 명인 “벙크 존슨”은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지만 10여년 후 가치가 드러나게 되고 어느 한 음악평론가가 그를 수소문한다. 그리고 그는 한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던 존슨을 찾아냈다. 존슨이 그 곳에 있었던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사고로 앞니가 몽땅 부러져서 더 이상 트럼펫을 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그는 틀니를 만들고 재즈계로 복귀했다.


 술은 인간의 친구이다. 그렇지만 술은 때때로 인간에게 화근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재즈와 술은 상당히 관계가 깊다. 재즈는 담배 연기 자욱한 선술집에서 여흥을 돋우는 음악으로 이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최고의 재즈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은 애주가로 유명했고 그는 절대 안주를 마시지 않았다. 역사상 최고의 속주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연주는 정신질환과 알코올로 점점 퇴색해 갔고 결국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재즈 아티스트는 아무리 성공해도 귀족으로 변신하지 않는다. 이들은 분명 예술가이지만 한편으론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엔터테이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친근한 애칭과 별명이 따라다닌다.

 

 예를 들어 드러머 엘빈 존스의 별명은 ‘옥토퍼스(octopus)’였고 트럼펫 연주자인 디지 길레스피는 앞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디지(dizz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색소폰 연주자였던 캐논볼 애덜리의 본명은 줄리언 애덜리이다. 대포알이라는 의미의 별명 ‘캐논볼’을 공식적으로도 사용한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재즈 아티스트들은 재미있는 별명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장애를 극복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다. 정신과 육체의 핸디캡을 딛고 자신의 세계를 확립한 재즈 아티스트들 역시 많다.

 

 “미셀 페트루치아니”는 불완전 골생성증이란 질병을 앓고 4살 이후로 성장이 멈추었다. 그의 화사한 음악은 그가 장애를 극복했다기보다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축복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영롱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차가울 정도로 정제된 사운드와 뛰어난 기교는 리스트와 비교되기도 한다.

 

 “아트 데이텀”과 “레니 트리스타노”는 시각 장애를 극복한 아티스트였으며, “장고 라인하르트”는 손가락 장애를 극복하고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이들은 자신의 재능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장애를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재즈를 연주하는 흑인은 화려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흑인’이라는 약자에 속한다. 그래서 음악은 더욱 절실하고 처절한 자기표현의 도구가 된다. 인종차별이라는 큰 폭력은 인간의 자기가 남보다 우월하다는 우월감에서가 아닌 열등감에서 비롯되었다.

 

 백인 아내를 가지고 있다는 죄(?)로 영창 생활을 한 색소폰 연주자 “레스터 영”, 백인 여성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던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 그리고 재능을 시기당하여 왼팔이 부러진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 등은 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백인들에게 시달려야만 했다.


재즈의 디바로는 처연한 슬픔을 매우 잘 드러내는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가공할 만한 스윙감을 갖춘 “엘라 피츠 제럴드(Ella Fitzgerald)”, 풍부한 저음과 화려한 스캣, 온화함을 자랑하는 “사라 본(Sara Vaughan)” 등이 있다.  

 

----------빌리 홀리데이의 가슴으로 부터 울려오는 깊은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출처 : 김학권과 재즈
글쓴이 : 변산바람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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