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3.21 몽셸미셸1] 햇빛찬란한 어느 오후, 꿈속을 헤매던 시간을 추억하며

mistyblue 2013. 4. 28. 15:41

 

캉을 떠나 몽셸미셸로 향하는 날은 아침부터 서둘러서 일곱시반에 나왔다.

역시나 비가 흩뿌리고 구름이 잔뜩 낀 날씨다.

프랑스의 3월 날씨가 원래 우중충한 게 아니라면, 우리가 구름과 비를 몰고 다니는 것임에 틀림없다.

계속 이야기하게 되지만, 비가 오다 해가 반짝 났다가, 우박이 내리다 눈과 비가 번갈아내리는 이상한 기후현상이 처음엔 신기했지만,

이제 짜증이 날려고 한다.

여행지마다 사진이고 캠코더고 이 이상한 날씨때문에 제대로 나온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우산을 쓸려니 바람때문에 우산이 뒤집어지기 일쑤고, 그나마 가져온 우비가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것 같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비를 아껴보려고 국도로 경로를 잡았는데, 한 두시간을 가도 몽셸미셸 반도 못 왔다. 

국도는 경치가 아기자기하고 동화같지만, 동네에 들어가면 굽이굽이 헤메기 일쑤고 속도는 20~30밖에 낼 수 없다.

그러다보면 고속도로로 삼십분이면 갈 거리를 두 시간 걸리는 건 문제도 아니다.

운전을 하던 blue가 드디어 국도로는 운전을 못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수동으로 운전하다보니 다리, 어깨도 너무 아파오고,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거다. 원래 오토로 해서 같이 운전하려고 했는데, 차값이 무려 백만원 넘게 차이나고 기름값도 디젤과 일반 휘발유 차이가 나다보니 경비를 아껴보려고 차를 수동으로 한 게 지금까지도 잘 한건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결국 열두시가 넘어 한시로 이동할 무렵 몽셸미셸에 도착했다.

그랑빌, 아브란체스를 통해 몽셸미셸로 들어가는 길을 택했는데 조금씩 다가갈수록 몽셸미셸이 손가락만한 크기에서 점점 커다래져갔다.

한가지 기분좋은 일은 날이 점점 화창해져온다는 거였다. 프랑스 온 뒤로 처음으로 맑은 날씨였다.

몽셸미셸에 들어오자마자 의도하지도 않게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몽셸미셸의 캠핑장이 떡하니 나타났다.

보아하니 꽤나 비싸보였다.

파리근교에서 묵은 방갈로보다 훨씬 좋아보였다. 원래는 와서 주로 캠핑을 할 작정이었는데, 연중무휴로 개장하는 캠핑장도 3월에 텐트를 치는 것은 안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한다. 가격이나 알아보자고 가니, 40유로가 조금 안된다. 첫날 미스터배드에서 워낙 비싼 가격으로 묵은 터라 이 정도 시설에, 이 정도 가격이면 이제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1시도 되기 전 숙소를 잡고나니 마음이 편하다. 더구나 날도 화창하고 몽셸미셸도 저 앞에 있다.

 

차를 가지고 몽셸미셸쪽으로 향하는데 숙소에서 거의 이분도 안 되는 거리다. 주차비는 4유로.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걸어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날은 이제 아주 맑고 화창해졌다. 사진에 담기는 몽셸미셸이 정말 아름답다.

도저히 내 눈 앞에 이런 건물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갯벌위에 떠있는 수도원. 천공의 성 라퓨터와 정말 흡사한 모습이다. 그 만화가 모델로 이 수도원을 삼았다는 게 나는 사실일 것만 같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 단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점심을 먹고 있기도 하다. 점심은 커다란 빵을 주먹만큼 잘라주면 음료수랑 먹는 게 다다.

건물 근처에 거의 다 왔는데 들어가는 문을 못 찾겠다. 건물 왼쪽으로 난 다리 비슷한 걸 따라가니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고혹스럽다.

 

 

캠코더로 정신 못 차리고 촬영하고 있는데, 햇빛을 향해 뭔가 삼각형 모양들이 뷰파인더에 하나가득 잡힌다.

어두운 곳에선 안 나타나는데, 햇빛쪽을 향해 보기만 하면 무조건 나타난다.

아까 아브란체스에서 몽셸미셸 오던 길에 캠코더를 떨어뜨렸던 기억이 나서 겁이 더럭 난다.

벌써 고장이 나면, 아직 5개월도 더 남은 일정을 어떡하라는건지. 눈앞이 캄캄하다.

blue가 별거 아닐거라고  둘러보자고 하지만, 나는 캠코더때문에 정신이 없다.

결국 이리저리 살펴보던 blue가 캠코더 앞의 렌즈뚜껑도 닦아보고, 뚜껑을 돌려 열고 렌즈를 또 닦은 후 삼각형문양이 없어졌다.

어제 에트르타에서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촬영을 한 탓에 이물질이 많이 들어간 때문이었던거다. 암튼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 성내 골목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골목의 간판들이 그림으로 무엇을 파는 곳인지 표현한 것도 그렇고 오스트리아의 게슈트라이데골목같기도 하고, 프라하의 황금소로를 걷는 듯도 한것이 아기자기 예쁘다. 한때의 일본관광객들이 무리를 져서 지나간다. 가이드 할아버지가 눈이 파란 서양인인데, 일어를 정말 유창하게 발음한다.

우리도 같이 쓸려다니다보니 마치 우리가 일본관광객처럼 보일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 캠코더를 보니 전부 소니, 니콘 등 일본거다.

눈앞에 프랑스인인 듯 보이는 아저씨가 귀에 익숙한 말을 하고있길래 정신을 차려보니, 아저씨 입에서 유창한 일어가 쏟아지고 있다.

얼굴 하얗고 코도 높은 아저씨의 입에서 일어가 흘러나오니 기분이 너무 이상하다.

 

골목을 따라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가 하나가득이다. 머리양쪽에 칼이 꽂혀있는 해골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러고보니 이 몽셸미셸에 얽힌 이야기가 떠오른다.

만조때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갯벌 위에 수도원이 지어지게 된 배경이 대천사장 미카엘이 오베르 대주교의 꿈에 나타나 바다 위에 예배당을 지으라고 명령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물에 잠기면 갈 수 없는 작은 섬에 수도원을 지으라니 말도 안된다고 이를 무시했지만, 두 번이나 꿈에 더 나타나 재촉하던 대천사가 결국 손가락으로 빛을 쏴서 오베르의 머리에 구멍을 내자 그제야 서둘러 이 몽셸미셸을 지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아브랑슈의 교회에 구멍난 해골이 보관되어있다고 하더니, 여기 기념품가게에 있는 해골이 바로 대주교의 구멍난 해골을 본떠 상징적으로 만든 건가보다. 그러고보니 그랑빌을 거쳐 왔던 중간도시 이름인 "avranches"가 아브란체스가 아니고 아브량슈였구나,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프랑스에 오니 당황스러운 건 거리를 다니며 마주치는 간판이나, 도로의 표지판을 읽을 수가 없다는거다.

그래서 나름대로 알파벳 소리나는대로, 마치 스페인어처럼 읽는다. 우리끼리는 통하면 되니까~ 불어는 기본적인 메르씨, 빠흐동, 엑스뀌제무아, 오흐브와, 봉쥬르 밖에 모르고 왔다.

조금 공부해볼 생각도 있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이 어설픈 불어를 하면 오히려 프랑스내에 체류하는 불법노동자 정도로 취급받는다는 말을 듣고 하다 말았다.

물론 전부 내 나름의 불어공부를 하지않는 자기합리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여행준비를 하면서 불어나 스페인어 공부까지 한다는 게 생각만 해도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조금 생각나는 건 있다. 엉 꺄페 실부뿔레 (커피 한잔 주세요) 이 말은 파리의 까페에서 커피 한잔을 꼭 마셔보려고 준비했는데, 파리의 스노우캣에 나오는 시테섬 주변에서 blue와 크게 싸우는 바람에 자연스레 써먹지 못하게 되었다.

 

석양의 몽셸미셸, 칠흙같이 어두운 밤 하나둘 조명이 켜진 몽셸미셸, 우리가 에테르타에서 만났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몽셸미셸 등 엽서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몽셸미셸을 그린 그림도 많은데, 하나에 5유로 정도가 보통이다. 이 정도면 blue에게 직접 그리라고 하면 육천원 정도를 또 아낄 수가 있겠다.

 

 

 

수도원쪽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의 가게들을 살펴보니, 주로 왼편에는 아기자기한 기념품 가게이고 오른편은 피자집, 호프집, 크레빼, 아이스크림, 커피, 레스토랑 등이다.

올라가는 길의 오른편은 몽셸미셸의 바깥쪽에 위치해서 갯벌쪽을 향해 창이 나있어 지나가면서 얼핏 바라봐도 전망이 기가 막히다.

나도 머리 희끗해질 무렵 blue와 이곳을 다시 찾아 바다를 바라보며 향이 그윽한 와인 한잔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한때의 일본인 관광객 무리에 또 휩쓸려 수도원을 향해 저절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어쩌면 이렇게 다니는 곳마다 일본 관광객이 이처럼 많을까?

지금이 비수기라 그런지 몰라도 관광객이 별로 없는 편이지만, 몽셸미셸이나 파리처럼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곳이면 어김없이 그들이 있다.

대학생처럼 어려보이는 사람도 있고, 4~50대 아줌마들이 아주 많고, 노년층은 남녀 구별없이 정말 많다.

전에 터키여행할 때도 그랬지만, 외국 관광지에서 만나는 한국 사람은 대부분 신혼여행객임에 반해 다른 나라 사람들은 로맨스 그레이를 즐기러, 양탄자를 살겸 해서, 친구들끼리 놀러 온 사람 정말 다양하다. 일년에 휴가라야봤자 일주일에서 열흘 얻기도 어렵고, 그것마저 붙여서 쉬면 눈치 보이고, 이틀씩 삼일씩 나눠 쉬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해외여행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우리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극단적인 조치를 생각하기 전에는 이건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요새는 주5일제로 옮겨가는 터라, 여가가 좀 많아지긴 했지만 그렇게 일주일에 주어지는 이틀로는 차막히고 어디 놀러가는 건 생각도 하기 힘들다.

집에서 뒹굴뒹굴 하다가 허무하게 주말이 다 흘러가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일을 열심히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한만큼 돈도 많이 벌고, 근사한 휴가도 즐길 수 있는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돌을 하나하나 깎아서 만들었다는 몽셸미셸의 건물 자체를 즐기랴, 멀리 바라보면 바다가 보이는 경치를 즐기랴~

몽셸미셸에서는 어디를 봐야할지 정신을 못 차릴 것 같다. 이쪽으로 난 골목도 먼저 가보고 싶고, 저쪽도 가야 할 것 같고~

일단 건물 중심에 난 골목을 따라 수도원까지 쭉 따라올라보면, 내려오면서 건물 제일 바깥쪽으로 난 계단이 있다.

그곳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레 처음 들어왔던 입구까지 이어진다.

나 역시 단체관광객에 휩쓸려 가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다.  

 

수도원에 도착하니 또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금색 은색으로 된 연필들이 있고 그 앞에 사람들이 테스트용으로 써본 흔적이 있다.

나도 금색으로 된 연필 하나를 집어서 내 싸인을 한번 해보는데, 정확히 가운데 토막이 뚝~ 하고 부러져버리는거다.

정말 어이없다. 특별히 힘을 준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BLUE가 어찌할바를 모르는 내 손에서 연필을 빼앗더니 다시 연필통에 넣고는 내 손을 잡고 휙 수도원위의 기념품가게를 나와버린다. 부러뜨렸으니 그 연필을 사야되는 거 아닌지 BLUE에게 물었더니, 원래 그렇게 부러질 정도면 불량품이라서 안 그래도 되는거란다.

잘못하고 와서 그런지 캠코더를 찍으며 건물 바깥쪽 외벽으로 나가다가 발을 헛디디고 말았다.

넘어지기까진 안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성스러운 곳에서 아까 잘못을 하고 나와서 그런가 괜히 탓을 하게 된다.

건물 바깥쪽으로 도니 아까 골목 안에서 본 레스토랑 건물의 창가쪽이 오른편에 나온다.

  

저마다 테라스에 의자를 내놓고 파랗게, 빨갛게 예쁜 장식을 해놓았다. 유럽을 생각하면 이렇듯 가게 밖으로 나온 테라스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며, 음료수 한잔 시켜놓고 여유를 즐기는 장면이 가장 인상깊다. 아직 3월이지만 장갑을 껴야 할 정도로 추운 날씨때문인지 아직 테라스쪽은 텅 비어있다. 햇살만은 뜨거워서 창가에 있는 사람들이 바깥 경치를 보며, 담소하기는 정말 좋을 것 같다. 며칠째 계속 비가 내리다가 이곳 몽셸미셸에 오는 길 갑자기 파랗게 갠 하늘이 무척 아름답다.

그 하늘이 창문에 비추어 창문도 파랗게, 하얀 구름을 닮아 하얗게 물들어있다.

각각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건, 이곳에서만큼은 모두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여행을 오니 행복한 사람들에 휩싸이게 되고, 그 기운이 전염되어 나 역시 항상 행복해진다.

머리아픈 일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고, 단지 이곳을 내 눈에 하나가득 담고, 내 마음에 담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일 같다.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 여기에서 무얼 봤는지에 대해 잊지않기 위해 열심히 담아놓는다. 캠코더에도, 사진에도 담아본다.

역시 단순해지니 좋다.

 

여기에 온지 벌써 세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며칠동안 너무 루스하게 움직이지 않았는지 싶어서 오늘은 내친김에 근처에 있다는 생말로에도 다녀오기로 했다.

BLUE는 예전 대한항공 CF를 보면서 꼭 이곳 몽셸미셸을 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나는 세계여행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갯벌에서 가족 세명이 기념촬영을 하면서 십년의 약속을 지켰느니 어쨌느니 하길래 뭔지 잘 몰랐었다. BLUE가 얼마나 이곳을 좋아했던지, 몇시간만에 1GIGA DSLR을 몽땅 채워버렸다. 생말로에 가서도 뭔가를 담으려면 메모리를 비워야 한다. 노트북에 얼른 백업을 받고, 생말로로 향해 차를 몰았다. 몽셸미셸을 찾고 나니 생말로로 가는 길은 나름 간단했다.

갯벌이 드러나 섬에 건너가볼 수 있다는데 도통 어디쯤인지 찾을 수가 없다. 성벽 안에 완벽한 구시가지가 있다길래 차를 몰고 들어가봤다.

정말 중세풍의 건물들 사이로 예쁜 가게들이 많고, 현지인들도,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보인다.

몽셸미셸을 보고 난 다음인지 왠지 김이 빠져서 BLUE도 그렇고 나도 시큰둥하다. 몇번 돌다가 대체 뭘 봐야 하는건지 갸웃하다가 보니 시간이 다섯시를 향해 간다.

올 때도 한시간 넘게 걸렸는데, 숙소에 돌아가야 될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몽셸미셸에 숙소잡는 게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차를 돌려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이곳 프랑스는 마을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있는 구조이다.

나도 그렇지만 타고난 동물적 방향감각을 자랑하는 BLUE 역시 이곳 프랑스의 도시에 한번 들어오기만 하면 한시간 헤매는 건 기본이다.

나침반과 두꺼운 프랑스 미쉐린을 갖고도 한참을 고생하다, 역시 나가는 길은 우연히 찾았다.

생말로엔 괜히 왔다 싶지만, 대신 얼른 가서 몽셸미셸의 석양과 야경을 찍자고 위로를 삼았다.

 

출처 : GreenLady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글쓴이 : greenlady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