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노을 풍경.. 똘레도 언덕에서]
아까 세고비아에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낯선 스페인어 앞에서 얼마를 내야하는건지 주차기계앞을 한참 지키고 섰었다.
그러다 결국 종일권은 2유로일 거라고 둘이 의견일치를 보고 주차권을 끊었다.
끊고나도 안심이 안되서 스페인어 사전을 가져와 확인하려고 하는데, 현지인인 듯 보이는 부부 중 남자쪽에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주차권을 끊을 필요가 없다는 것 같다. 순간 오늘이 일요일이구나라는 생각이 확 스쳐간다.
앗, 이럴수가~ BLUE는 이미 끊은 주차권을 그들 부부에게 보여주고, 여자는 우리를 보며 어깨를 으쓱하고 팔을 위로 펴보이며 안됐다는 표정을 한다.
으그, 좀더 빨리 말해주지~ 괜히 원망하는 마음까지 든다.
BLUE는 낯선 곳에 왔으니, 이런 정도의 일은 헤프닝에 불과하다고 잊어버리자고 말한다.
그러고는 정말 잊어버리고 활짝 웃어보인다. 나는 몇시간은 지나야 잊을 수 있는데, 그걸 잊기도 전에 이곳 똘레도에서 또 어이없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린 아까의 주차일은 또 말끔히 잊고, 최대한 똘레도의 구시가지 근처에 차를 대는데 왠 흰색 단발머리에 빨간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주차 안내를 한다.
차를 여기에 대라고 안내한 후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다가오고, "올라" 하더니 2유로를 내란다.
아무생각없이 2유로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아차 싶다. 주차기계가 있는데 왜 우리에게 따로 돈을 받은건지 이해가 안 간다.
아까 세고비아에서 무료로 주차해도 된다는 스페인부부의 말도 생각난다.
이미 똘레도를 사진에 담기에 바쁜 BLUE를 저만치 앞서보내고 주차요원을 가장한 아저씨의 행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오는 차마다 여기저기로 안내를 하다가, 차가 주차를 하고나면 근처로 다가가서 그저 서성거릴 뿐이다.
내린 사람 중 벌써 두 그룹이 이 병만이 닮은 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고 그냥 간다.
아뿔사~ 당한 것이다. 스페인 현지 사람들이야 어떤 주차장은 일요일에 무료라는 걸 알겠지만, 워낙 전 세계 관광객이 모이다 보니 잘 모르는 외지 사람이 오면 이렇게 삥을 뜯는 것이다.
세고비아에선 우리가 잘 몰라서 2유로를 기계에 고스란히 바치고, 그걸 또 깜빡하고 병만이 아저씨에게 2유로 삥 뜯기고~
무식한 것이 죄라고 이렇듯 돈을 들여 체험을 해야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건가보다.
정말 어이없지만, 나름 열심히 주차안내를 하고 부지런히 달려가서 돈을 받기도 못 받기도 하는 할아버지가 불쌍한 생각도 든다.
쉼없이 차가 주차되고, 돈을 건네는 사람 반, 안 건네는 사람 반이니 그 할아버지 벌이가 꽤나 짭잘하겠다.
보기와 달리 깜찍한 술수를 쓰는 할아버지를 너그럽게 용서하기로 했다.
하긴 용서 안하면 무슨 수가 있나? 말도 안 통하는데 가서 사기치지말고 돈 돌려달라고 따질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세고비아에서 이미 스페인풍의 건물, 구시가지의 매력에 한껏 빠진 터라 이곳 똘레도에서는 별 매력을 느낄 수 없었다.
생장피에드포르보다 조금 컸던 세고비아, 세고비아보다 비교도 안 되게 넓은 똘레도~
조금씩 비슷한 듯한 모습에 난 지쳐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말하는 유럽의 그렇고 그런 성당, 고풍스런 건물, 기념품 가게들에 이제 질려버린 것이다.
불과 열흘만에 말이다.
그동안은 시차도 적응하고, 피곤한 체력때문에 하루에 한 곳 보는 데 만족해야했는데 그러다보니 프랑스의 일정이 너무 길어져버렸다.
아직 아를 등 남부지방과, 동쪽의 스트라스부르, 콜마르 등 보고싶은 곳이 하나가득 남았는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급해서 하루에 세고비아와 똘레도를 모두 소화하려다보니, 그게 마침 마지막에 본 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와 겹치다 보니 더더욱 부작용이 난 것이다.
이제 구시가지는 더 보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도 예쁜 광장을 만나고, 사랑스런 아기와 가족의 나들이 모습도 보고..
정말 더할나위없이 완벽한데.. 하루에 비슷한 컨셉의 두 도시를 보고나서 그런지 난 점점 이게 일상인듯 싶고 더 이상 새롭지않다.
아직 떠나온지 일주일정도밖에 안됐거든.. 정신차려.... ㅠ.ㅠ 하지만 지겨운 걸 어떡해..
근데 지겨운게 아니고.. 지쳤던 거 같다.
회사도 때려치고.. 돈도 없으면서 남은 돈 탈탈 털어 대책없이 여행왔는데..
우리 실컷 정말 열심히 놀다가자 다짐하느라..
여유없이 일주일동안 정말 치열하게 달려온거다..
그래서 그랬나보다.
아직 인생은 길고.. 우리가 이번이 첫 발길을 내딛은 여행의 시작이지 마지막이 아닐진데..
마치 마지막이 될 것처럼 너무 가열차게 달려온거다.
더구나 이 미로같은 똘레도의 골목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세고비아에서 유명한 애저(아기돼지)요리를 먹으려다, 가게 입구에 모형으로 갖다놓은 아기돼지 통구이를 보더니 BLUE가 도저히 불쌍해서 못 먹겠다고 해서
점심을 빵 한조각으로 때운 터라 배가 너무 고프다. 세고비아에서 걷고, 이곳 똘레도에서 또 몇시간 정신없이 걷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온 몸이 후달린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게 먹고 급하게 다니느라 지쳤지않았나 싶다. 나름 블랙베리,블루베리,라즈베리가 섞인 버라이어티잼빵이다.]
정말 이제 고풍스런 골목은 더 보고 싶지도 않다. 이제 우리가 세워놓은 주차장으로 돌아가려고 이 골목 저 골목 들어가보는데 점점 관광객도 없어지고, 낡고 허름한 건물들만 나온다.
걷다가 전망이 탁 트인 언덕이 나왔는데, 아까 우리가 차를 세웠던 곳에서 보던 전망과는 전혀 다르다.
맥이 탁 풀린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이제 어둑해지려는 듯 마지막 힘을 다해 햇살이 더욱 강렬하게 비친다.
문득 앞에 메어놓은 그네 두개가 눈에 들어온다.
앞에 벤치도 많은데 나는 굳이 그 그네로 다가간다. 이 동네 아이들은 키가 얼마나 큰건지 그네에 오르기 위해 발을 굴러야 할 지경이다.
그네에 앉고서도 발이 한뼘은 떨어져있다.
발이 안 닿으니 어떻게 그네를 타야할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처럼 몸을 앞뒤로 움직여보니 그럭저럭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그네가 움직인다.
앞에서 동네 어르신 몇몇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두살쯤 먹어보이는 젖꼭지를 문 예쁜 여자아이를 데리고 마실나온 아기 엄마도 있다.
그리고 조금 정신이 없는 듯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헤헤 웃어도 보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그네 앞을 맴맴 돌고 있다.
지금 길을 잃었다는 것도 잊고 푹 빠져 그들을 보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절벽 저 바깥쪽을 향한다.
태양은 정말 밝게 빛나고 있다. 스페인의 태양은 확실히 프랑스와는 달랐다.
너무 밝고 따뜻하고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고 왠지 유쾌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하늘은 내가 이전에 봤던 어떤 하늘보다 새파랗다.
정말이지 사막처럼 광활한 듯도 하고, 오래된 듯한 건물들이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있으며, 올리브나무의 쑥빛처럼 검은듯, 흰듯, 녹색의 빛깔이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때쯤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힘들고 지친 몸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움직여 어딘가로 향해 걸었다.
인포메이션만 문을 열었고, 도시 지도를 얻었다면 이렇게까지 헤매지는 않았을 텐데~
어느덧 동상이 서있는 작은 광장이 나타나고, 유명해보이는 성당 비슷한 건물이 나온다.
역시 관광객은 한명도 찾아볼 수 없고, 비둘기의 구구대는 소리만 울려퍼질 뿐이다.
성당의 조각상 근처는 비둘기의 아지트인 양 열댓마리가 팔락거리며 앉았다 날아갔다하고 있다.
그 작은 골목길에서도 금발머리의 미소년들이 축구공을 차며 놀고있다.
정말 사랑스럽다. 분명히 난 엄청스레 진이 빠지고 힘든데.. 그래도 사랑스럽다.
다행이 저 앞에 똘레도 구시가지의 지도가 붙어있다.
이렇게 미로처럼 얽혀있으니, 다니다보면 지도가 붙어있는 곳이 우연치않게 나오곤 한다.
물론 좀 유명한 건물 앞에 주로 붙어있다.
난 타고난 방향치이니 아예 지도를 분석할 생각도 못하고, BLUE가 저 유명한 성당의 이름과 일련번호를 확인하며 지도를 왔다갔다하며 분석하기 바쁘다.
우리가 오던 방향에서 오던 커플 역시 이 지도 앞에서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우리도 저들도 보아하니 길을 잃은 것임이 분명하니, 누군가 저벅저벅 앞서가더라도 따라가면 길이 나오려니 하는 기대감을 갖기는 어려운 것 같다.
동물적 방향감각을 타고난 BLUE 역시 확신은 잘 못하겠지만, 이렇게 저렇게 가보자고 하고 우리가 먼저 길을 나선다.
저쪽 커플은 아직도 지도 앞에서 의논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는 길을 걸어나오다, 인포메이션이 있는 광장으로 올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길치인 나 역시 주차장을 찾을 수 있다.
오다보니 우리가 거슬러 올라갔던 길을 그대로 내려오기만 하면 되는거였지만, 아까 우리는 이상한 미로에 빠졌는지 아까 간 길을 계속 맴돌기만 했었다.
구구대는 비둘기들이 마치 우리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이제 언덕으로 난 길을 돌아 가는 길~
아까 처음에 봤던 예쁜 언덕길에 어느덧 노을이 지고 있다.
코끼리 열차, 버스가 지나가는 차도를 따라 다시 언덕위로 향하는 계단이 있고, 차도 오른쪽으로 빙 돌아 나선형으로 아래까지 이어진 빨간 보도길이 있다.
그 길 중간중간엔 쉬어가라는 벤치가 저쪽 절벽 너머 언덕을 조망할 수 있게 자리잡고 있고, 또 띄엄띄엄 고풍스런 모습을 한 가로등이 놓여있다.
아까도 예뻤지만, 이곳에 노을이 지니 정말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어차피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것 말고 일정도 없고, 내친김에 벤치에 털썩 앉아 노을이 질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어스름 따스한 누런 기운이 똘레도 구시가지를 감싸안더니, 조금씩 주황빛으로, 붉은 빛으로 물들어간다.
그 길 사이로 수많은 사연을 지닌 사람들이 오간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거나 목마를 태우고 지나가는 가족들도 있고, 격렬하게 입맞춤을 하며 걸어가는 커플도 있다.
눈앞에서 키스를 하다가, 채 몇발자국도 못 띠고 다시금 입맞춤을 하고 끌어안는다.
가는 내내 그러느라 별로 멀리 가지도 못한다. ^^
똘레도의 해지는 풍경과 그런 그들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사람들! 세상이 온통 핑크빛으로 아름다워 보인다.
친구인 듯 보이는 키작은 두 여학생들이 내 눈앞에 와서는 마치 수다맨같은 포즈를 하고 서있고, 한명은 사진을 찍는다.
포즈를 취하던 피비캐츠 닮은 여학생이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멎쩍은 듯 웃어보인다.
나도 그 애와 눈을 맞추며 함께 웃어준다.
이곳에선 누구와도 눈이 마주치면 웃고, 즐겁게 서로의 마음을 교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석양의 똘레도 언덕에서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그 행복감만으로 말이다.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말이 입에서 그치질 않는다.
얼마든지 바라보고 앉아있어도 질리질 않는다.
보통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으면 눈에 보이는 것만큼 아름답지 않아 속상하기 마련인데, 이 똘레도 언덕의 노을 만큼은 정말이지 눈으로 본만큼 사진도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나온다.
스페인은 정열적인 사람들, 소박하지만 당당해보이는 건물에도 있지만, 무엇보다 태양이 갖고 있는 매력을 빼놓을 수 없다.
스페인의 태양은 정말 눈부시고, 아름답고 사람을 기분좋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모든 걱정과 시름을 다 잊고 인생을 즐기라는 교훈을 전해주는 것 같다.
난 이 아름다운 스페인의 태양, 하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제 충분히 똘레도의 석양을 즐겼으니, 포르투갈로 떠나야 한다.
세고비아, 똘레도의 구시가지에 질렸으니 다른 나라로 가보자고 가이드북을 펼친다.
생각해보니 포르투갈에서 뭐가 유명한 지 모르겠다.
5백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의 끝인 줄 알았다는 로까곶 말고는 말이다.
거기다 내용을 읽어보니 온통 구시가지, 구시가지~ 구시가지의 모습을 간직한 것이 매력이란다.
큰일이다. 구시가지에 질려버려 새로운 곳으로 떠나려는데 포르투갈에 볼거리가 오로지 구시가지라니~
난 그냥 포르투갈을 빼버리는 게 낫지않을지 BLUE에게 말해본다.
사실 여행지로 별로 유명한 나라도 아니고, 나도 아는 것도 없고 하니 건너뛰는 건 어떠냐고~
그러자 BLUE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가봐야한다고 생각한단다.
예전에 터키를 가기 전에 터키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막상 가본 후에야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나라인 줄 알았듯이~
포르투갈도 잘 모른다고 가지 않는다면 영원히 모르는 나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거다.
흠, 듣고 보니 그렇다.
그리고 그 말이 왠지 근사해보인다. 잘 모른다고 넘겨버리면, 영원히 모르는 나라로 남게 된다는 말~
그러고 보니 빨리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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