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7일_리스본에서세계에서두번째로크다는아쿠아리움을가다
적는 시간 : 한국시간 3월 27일 오후 9시 02분
포르투갈시간 3월 28일 오전 5시 03분
역시 무리를 하면, 하루가... 심하면 다음날 오전까지 공치게 되는 법인 것 같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밤에서 새벽까지 운전을 하느라 피곤했는지, blue는 아침 열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느즈막히 아침을 해먹고 벨렘 지구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아쿠아리움을 가보기로 했다.
어제 보니 이곳이 남부지방이라 그런지 사람들 옷차림이 가벼웠다.
프랑스, 스페인까지도 아직까지 패딩 점퍼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제 보니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사람들까지 보였다.
그래서 나도 하늘하늘한 스커트에, 보라색 난방을 꺼내입었다.
조금 춥지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나 역시 따스한 남부지방에 내려왔다는 느낌을 만끽하고 싶었다.
아직 여행온지 열흘이 조금 넘었지만, 이곳의 변덕스런 날씨탓에 나도 유럽 사람이 다 된 것 같다.
원래 비오는 날만 되면 센티멘털해지는 기분을 즐기는 편이어서,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만 해도 비가 올 때면, 구름이 흐려질 때면 역시 난 유럽체질이라니까 하며 마냥 좋아라했었다.
그러다가 틈만 나면 흐려지는 하늘, 비, 눈, 우박 종잡을 수 없이 뒤바뀌는 날씨를 수없이 만나다보니 잠시라도 빛이 날 때면 온몸으로 그 따사로움을 즐기게 되었다.
포르투갈 역시 비가 내릴라 치다가도, 금새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반짝이는 기분좋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 스페인의 바다호스에서 포르투갈의 경계로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는거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을 넘어올 때도 그랬다.
찌뿌둥하고 비가 흩뿌리던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오자마자 해가 반짝 빛나고, 햇볕이 뜨겁기까지 해서 선글라스에 모자까지 꺼내서 썼을 정도다.
역시 스페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강렬한 태양이라는 사실을 이곳 유럽에 오니 절실히 느끼게 된다.
어제 오면서 본 리스본은 맑고 쾌청했는데, 아침에 테라스쪽으로 보이는 뜰이 우중충하다.
구름과 비를 몰고 다니는 우리에게 역시 하늘은 안 도와주는건지 살짝 걱정이 된다.
곧 하늘은 다시 맑아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벨렘 지구로 나갔다.
캠핑장의 리셉션 여직원이 벨렘지구와, 아쿠아리움의 바깥 주차장은 주차비가 무료라고 했다.
이곳 주민들이 타는 트램이나 버스도 타고 싶었지만, 오늘은 열두시가 넘어 나가는 만큼 시간을 아끼고 싶어서 우리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짐이 너무 무겁다며 짐가방을 놓고 의논한 결과 출국하는 날 가이드북을 놓고 오다보니, 어디를 가든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그간은 에펠탑이니 똘레도니 대충 알고있는 지명 위주로 보면 되었으나, 포르투갈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하다 보니 수도인 이곳 리스본에 대한 정보가 많이 부족하다.
리스본이 이곳 이름으로는 LISBOA라는 사실도 여기 와서야 알았다.
지도책에 LISBOA라고 나와서 이곳이 우리가 가려는 리스본이 맞는지도 한참 맞다 틀리다를 놓고 BLUE와 갑론을박하다가 그냥 지도책이 오타가 났으려니 생각했었다.
포르투갈 경계로 들어오니 표지판에 계속 LISBOA 253Km 이런 식으로 나오길래 그게 오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아마 LISBON은 이곳 리스보아의 미국식 표현이고, 이곳 현지에서는 LISBOA라고 불리우는 것 같다.
정보는 별로 없어도 리스보아는 느낌만으로도 참 좋은 도시다.
그냥 오가며 파스텔톤으로 멋을 낸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바다와 면해있어 사방을 둘러봐도 낭만적인 해안선 풍경이 이어진다.
이를테면 야자수가 어디나 흔히 높이 솟아있으며, 물을 막아 요트를 띄워놓았는데 저마다 빨강, 파랑으로 예쁘게 꾸며 놓았다.
연노랑, 청록, 살구색 등 부드러운 파스텔톤으로 색칠된 건물들이 나란히 붙어있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바닷바람이 제법 불기는 해도 쌀쌀한 칼바람이 아닌 부드러운 산들바람이다. 머리칼을 휘감는 바람이 상쾌하다.
햇볕이 비추긴 하지만 썬글라스를 써서 시야를 가리고 싶지않게, 정말 딱 적당하다.
이곳 리스보아에 오니 뭘 봐야겠다는 목표가 없어 마음이 편하다.
벨엠 지구를 거닐며 그저 왼쪽으로 보이는 발견의탑이라든가, 오른편에 보이는 벨엠탑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바람과 태양을 즐긴다.
낚시 금지라고 쓰여있는 바로 옆에서 태연히 낚시를 하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보았다.
뭘 잡는지 어망에 가보니 새우 십여마리가 헤엄치고 있다.
새우를 먹이로 하여 뭔가 생선을 잡으려고 하는건지, 아니면 새우를 잡은건지 알 수가 없다.
BLUE에게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니, 새우는 잡으면 금방 잡는 어종이기 때문에 아마도 새우를 잡은 것이 아닌가 싶다고 이야기해준다.
아마 새우를 잡았나보다고 생각하며 또 어제 점보에 갔던 일을 떠올려보니, 정말 새우를 많이도 팔았던 것 같다.
이곳 리스보아의 앞바다에선 새우가 많이 잡히는 모양이다.
성수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나이 든 할아버지, 할머니가 정말 많다.
자기 몸 하나 챙기기도 버거울 것 같은 나이인데, 할머니의 굽은 등을 토닥토닥 두들겨주는 할아버지가 참 다정도 하다.
젊은 사람들은 여자친구 어깨에 손을 두르는 게 자연스럽지만, 어째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등을 어깨동무하고 벤치에 앉아있고,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의 어깨에 살포시 기댄 모습이 내겐 어색해보였던 걸까? 역시 내 편견은 끝도 없다. 두손을 곱게 맞잡은 채 걷는 모습은 하도많이 봐서 나도 이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난 이때껏 나이먹은 사람들에겐 로맨스도, 세상 사는 재미도 없을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유럽에 와보니 이렇게 아름답게 황혼을 맞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예전의 내 생각이 참 편협했구나 하고 있는데 마침 앞에 있던 노부부가 또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생각보다 찬지 약간은 굽은 허리, 쪼글쪼글한 손으로 할아버지의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던 할머니가 포르투갈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횡단했다는 옛날 비행기를 찍고 있다.
아무 생각없이 스쳐지나가다가 할머니가 찍는 비행기를 나도 찍어봤다.
괜스리 나이먹는 걸 두려워하고, 비관적으로 미래를 볼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저분들이 나의 미래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밝아진다.
벨엠탑 안에 들어가는 입장료가 4유로 정도 하는데, 나도 blue도 저 탑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세고비아의 백설공주의 성에서 탑 내부만 둘러보려다, 표 파는 할머니의 "tower is very very nice"라는 말에 혹해서 성 꼭대기에 숨을 헐떡이며 올라갔었다.
탑 내부도 충분히 높은 곳에 위치했으므로 경치가 매우 아름다웠기때문에, 굳이 성 꼭대기에서 더 나은 풍경을 기대할 순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이 체력만 소진하여 똘레도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땐 온몸이 때려맞은 듯 너무너무 힘들기만 했었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백설공주에게 독사과를 먹인 마녀에 그 매표소 할머니를 비유하곤 한다.
"아가씨, 이 사과가 얼마나 맛있는 줄 알우? 한 입만 먹어봐~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맛있다우"
그 유혹에 덥썩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백설공주처럼 우리도 할머니의 꼬임에 빠져 특별한 소득도 없이 체력과 돈을 소진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때가 떠올라 이 탑의 꼭대기는 안 올라가도 될 것 같다.
돈 한두푼 아끼려고 스쳐지나가다 나중에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 아니냐고 blue가 걱정의 말을 하지만 이곳 리스본은 어차피 기대한 것도 특별히 없고, 편안히 휴식의 개념으로 쉬어가기로 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기대한 게 없는 것과는 달리, 이곳 리스본은 지금까지 본 유럽 도시 중 가장 편안하고 따스하고 기분좋은 도시가 아닌가?
더 이상 뭔가 꼭 봐야 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이곳에 내가 와있다는 사실이 행복할 뿐~
blue가 점심으로 오렌지와 잼과 버터를 바른 빵, 삶은 감자를 준비해왔다.
두어시간 안 걸어도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빵과 오렌지를 먹고 아쿠아리움을 찾아나선다. 캠핑장 리셉션에서 받아온 관광안내지도 하나에 의지해서 찾아가야 하니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좀 걱정이다.
지도엔 도로 이름같은 건 표시되어있지도 않다. 보기엔 해안가를 따라 쭉 따라가면 되는 것 같은데 해안가를 따라가다보면 꼭 막다른 골목, 부두가 나온다.
이렇게 차를 돌려 나가야할때마다 정말 난감하다. 트램길을 따라가면 될 것 같은데 트램길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을 몰라 blue가 난감해한다.
결국 다리 하나를 건너 바깥쪽으로 나갈 수 있었고, 아쿠아리움이라 생각되는 골목을 몇바퀴 헤매다 blue가 물어보는 게 낫겠다고 한다.
처음엔 외국인에게 물어보기를 죽도록 싫어했던 blue는 이제 조금만 모르는 것이 생기면 바로 아무나 잡고 물어본다.
이젠 말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영어를 하기도 한다. 누가보면 외국에 살다 온 사람인 줄 알 것 같다.
현지인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온 blue는 저쪽에 회색 사이버틱한 건물이 바로 아쿠아리움이고 주차는 여기 아무데나 하고 걸어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단다.
주차하고 아쿠아리움으로 걸어가는데, 벌써부터 수족관 볼 생각에 blue는 신이 났다.
우리 물가로 생각해서 수족관 보는데 이만오천원 정도는 예상했는데, 인당 10.5유로이다.
여기는 기분좋은게 0~13세까지만 유스요금을 적용하고 14~62세까지 같은 요금을 적용한다.
중고등학교 청소년, 대학생과 똑같이 요금이 적용된다고 생각하니 성인 요금이라도 나름 위안이 된다.
아쿠아리움은 플래시만 터트리지않으면 사진이나 캠코더 촬영을 해도 된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은 행운이다. 그렇지만 사진, 캠코더 촬영은 이제 접어둔 체 그저 구경이나 하며 기분전환하려고 했는데 또 뭔가를 찍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조금 생긴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 여행의 흔적을 남긴다는 게 기분좋다.
아쿠아리움은 대충 보고 넘어갔는데도 한시간반여를 소요할 정도로 규모도 매우 크고, 신기한 동물들도 많았다.
특히 수달이 헤엄치고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는데, 우리 똥구들 생각이 나서 삼십분을 넘게 넋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펭귄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고, 새가 머리 위로 날라다니다 입에 물고가던 생선을 툭 떨어뜨리고 가기도 했다.
정말 동물을 우리속에서 가두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자유로이 풀어놓고 있었다.
또 재미있었던 건 젤리피쉬, 즉 해파리였는데 한마디로 젤리피쉬의 향연은 환상 그 자체였다.
조명도 없이 검은 물속을 헤엄치는데 희뿌연 실루엣이 보이는 것이 스스로 광물질을 뿜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면 그저 흰 색이 아니고 파란색, 희뿌연색, 연두빛을 뿜으며 헤엄을 치는데, 마치 레이스달린 옷을 입은 무희가 우아하게 춤추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
아쿠아리움 구경을 마치고 꿈속인듯 빠져나와 좋은 기분에 약 2~3km 정도 바다를 운행하는 곤돌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편도에 3.5유로밖에 안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탔는데,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거려 멀미가 날 것만 같지만 그래도 재밌다.
편도로 끊은 탓에 다시 돌아오느라 힘은 들었지만~
오는 길은 해변을 따라 산보할 수 있는 길과, 테마공원을 만들어놨는데 하나하나 얼마나 잘 꾸며놨는지 그 중 하나만이라도 우리나라에 갖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이 우리는 모르는 사랑의 해변인지, 키스의 해변인지 오십미터 간격으로 젊은 연인이 붙어앉아 키스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말 정확히 오십미터 간격이다.
농담삼아 blue에게 저렇게 격렬하게 키스하다가 마주치는 부모님 눈에라도 뜨이면 어쩌지? 하고 물어본다.
그러다 나름 결론을 내렸다. 마주친 부모님 역시 서로를 열심히 보듬고 설왕설래하고 있을 거라 별로 상관없겠다고~
젊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지만 가끔 아주 연로한 분들도 열심히 작업에 임하고 있는 걸 많이 봤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또 배가 고프고 다리도 아프다.
차로 돌아와 삶아온 감자를 먹고, 캠핑장으로 돌아가는데 햇볕이 갑자기 뜨거워 꺼낸 썬글라스가 살짝 금이 가있다.
여행온 뒤로 자꾸 하나씩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는데, 썬글라스집도 잃어버린 품목 중 하나다.
가방에 대충 넣어두니 이렇게 깨져버리고 만 것이다.
햇볕이 너무 강해서 썬글라스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싼 대형마트 점보에 가서 골라보려고 했다.
근데 서양인들은 얼굴이 전부 돌출형으로 생겨 그런지 고글 모양의 썬글라스밖에 없다.
얼굴 넙적하고 평면인 나에겐 너무 우스운 꼴이다.
결국 금이 간 썬글라스라도 그냥 쓰기로 하고 돌아서는데 속이 쓰리다.
캠핑장에 돌아와서 어제 먹다남은 된장찌게와 상추쌈을 먹고, 난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blue는 3일 밀렸다는 가게부를 정리한다.
계산이 안 맞는지 100유로가 빈다고 아우성대던 blue는 계산을 잘못했다고 다시 계산하더니 이젠 돈이 남는다는 거다.
전에 톨비를 계산할 때 잔돈이 없어 내가 가진 5유로 계산했었다고 이야기하니, 다시 계산해보고 모처럼 정확히 동전까지 맞는다고 좋아한다.
컴퓨터를 내놓으라고 성화하길래, 어제 산 곰팡이 난 치즈에 맥주 한잔 하게 준비해달라고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며 얼른 상을 차린다.
한두개 먹어보더니 혀를 내밀며, 맛없다고 난리다.
나도 노멀한 치즈가 좋지 곰팡이 쓴건 자신없는데, 이런 거 도전해야 재밌다며 굳이 이걸 골라준 사람이 누구더라 새삼 떠올리게 한다.
그러곤 치즈를 쓸어놓고 자신은 감자칩을 먹고 있다.
난 저 치즈 어떡한다? 쩝~ 일단 먹어봐야겠다.
내일은 기대되는 구시가지와, 동물원에 가볼 셈이다.
그리고 간단하게 우리의 여행에 대한 글을 블로그나 홈피에 남겨야 하고, 내일 하루 더 머물고 모레는 이 정든 리스본을 떠나야 한다.
그래도 이별과 만남이 반복되는 게 여행이니까, 새로운 곳을 만난다는 설렘에 또 행복해지는 게 여행이니까 기쁜 마음으로 남은 리스본의 일정을 즐기고 또 떠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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