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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짜집기 경주여행 3. 괘릉

mistyblue 2013. 5. 4. 20:33

짜집기 경주여행 3. 괘릉

 

짜집기 경주 여행의 세번 째 이야기를 무엇으로 꾸밀까 하다가 괘릉으로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첫째는 경주의 유적중 가장 남쪽에 있는 것부터 훑어오자는 생각이 제일 컸다.

여기저기 중구난방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다야 어느 정도는 일관성을 가지고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괘릉에 대해서 초등학교 수학여행 때 해설사가 설명한 바로는 문무왕릉 아니면 원성왕릉으로 추정된다고 했으나

문무왕 수증릉이 발견된 뒤로는 기록에 의존하여 38대 원성왕릉으로 굳어진 것 같다.

당시 문무왕설이 나온 바탕에는 같은 시기의 김유신묘가 봉분 주위에 12지신상을 갖춘 것으로 보아

같은 양식의 무덤인 괘릉이  동시대 인물인 문무왕릉으로 추정한다는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 괘릉-1988년에 찍은 필카사진)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왕릉들도 그렇고 일본의 고분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통일신라시대를 포함, 그 이전의 무덤의 주인공이 백퍼센트 밝혀진 것은 백제무녕(령)왕릉 과

신라의 무열왕릉과 흥덕왕릉 뿐이라고 한다.

무녕(령)왕릉은 1972년 도굴을 전혀 당하지 않은 처녀분으로 발굴된 데다가 그 무덤 안에서 지석이 나왔기 때문이고

신라 무열왕릉은 능 앞에 비석을 받치는 귀부와 이수가 남아있는데 이수에 새겨진 글로 무열왕릉임을 안다.

그리고 흥덕왕릉은 깨어진 비편에서 흥덕왕릉임을 보여주는 조각이 나왔다는 것이고...

 

신라의 임금은 모두 56명인데 현재 경주에 남아있는 왕릉으로 비정된 고분은 모두 35기 뿐이어서 논란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번호만 붙은 고분, 예를 들어 천마도가 발견된 155호 고분은 유물인 금관등을 봐서 왕릉으로 추정되나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르는 상태라서 그냥 천마총으로 이름을 붙인 사실과 이런 무덤들이 100기가 넘게 있다는 사실로 봐서

나머지 왕들의 무덤은 어디 있느냐는 등의 논란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

 

경주왕릉 35기를 다 못본 상태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괘릉이야말로

신라무덤 중 최고의 무덤이라고 생각한다.

U자 형태로 둘러싼 배경의 소나무숲, 서역인을 닮은 무인석과 우리의 얼굴을 한 문인석,

눈은 부릅떴으되 절대로 무섭지 않은 웃음을 띠고 있는 네 마리의 석사자, 그리고 봉분 주위를 두르고 있는 12지신상,

전면이 확 트인 넓은 자리를 차지한 것 등 어느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 석사자의 웃음은 그보다 600년이나 뒤인 조선의 태종왕릉인 헌인릉에서 본

석사자의 호탕한 웃음과 일맥상통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을 보면서 괘릉 산책을 하시기 바란다.

2010년 3월 14일의 디카와 1988년의 필카사진을 같이 실어본다.

 

 

 

 

 

 

 

 

 

  

 

 

 

12지신상

子 자 -  쥐

 

丑 축 - 소

 

寅 인 - 호랑이

 

卯 묘 -  토끼

 

辰 진 - 용

 

巳 사 - 뱀

 

午 오 - 말 

 

未 미 - 양

 

申 신 - 원숭이

 

酉 유 - 닭

 

戌 술 - 개

亥 해 - 돼지 

 

 

 

 

 

 

 

 

 

 

 

 

 

 

 

 

 

 

 

괘릉은 울산에서 올라가다 보면 불국사역 약 2.5Km 못미친 지점, 괘릉휴게소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들어서 조금 들어가면 있다.

 

괘릉은 유네스코문화유산 지정지구에서는 제외되어 있는 것 같으나 편의상 유네스코유산으로 분류해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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