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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La Maritza (마리짜 강변의 추억), La Reine De Saba (시바의 여왕) - Sylvie Vartan

mistyblue 2014. 1. 14. 22:55

Sylvie Vartan (실비 바르땅)

 

1. La Maritza (마리짜 강변의 추억)

 

La Maritza c"est ma rivière
Comme la Seine est la tienne
Mais il n"y a que mon père
Maintenant qui s"en souvienne
Quelquefois...

De mes dix premières années
Il ne me reste plus rien
Pas la plus pauvre poupée
Plus rien qu"un petit refrain
D"autrefois...
La la la la ...

Tous les oiseaux de ma rivière
Nous chantaient la liberté
Moi je ne comprenais guère
Mais mon père lui savait
Ecouter...

Quand l"horizon s"est fait trop noir
Tous les oiseaux sont partis
Sur les chemins de l"espoir
Et nous ont les a suivis,
A Paris...

Parlé : De mes dix premières années
Il ne reste plus rien...rien
Chanté : Et pourtant les yeux fermés
Moi j"entends mon père chanter
Ce refrain...
La la la la ...
 
La Maritza, 그건 나의 강이야.
Seine강이 너의 것이 듯
정말 내 아버지 밖에는 없어.
지금도 생각나는
때때로...

내 나이 막 10살이었을 때,
나에겐 전혀 아무 것도 없었어.
그 흔한 인형 하나도 없었고
낮은 소리로 흥얼대는 후렴구 밖에는
예전의...
La la la la...

내 강가의 모든 새들
우리는 자유로움을 노래했었지.
나는 잘 몰랐었어.
하지만 내 아버지, 당신은 알고계셨지.
들으실줄을...

지평선이 매우 어두워졌을 때,
새들은 모두 떠나버렸지.
희망의 길을 따라
그리고 우리도 그들을 따라갔어.
Paris로...

대사 : 내 나이 막 10살이었을 때,
전혀 아무 것도 없었어... 아무 것도
노래 : 그렇지만 두 눈을 감은 채
나는 내 아버지가 노래하는 것을 듣는다네
그 후렴구를...
La la la la...

 

센 강이 당신의 강이듯이,
마리짜는 나의 강입니다.
그러나 지금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회상하는 것은 나의 아버지 뿐..

처음 10년간의 추억은 나에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아요.
가엾은 인형과 옛날의 보잘 것 없는 후렴구 외에는 아무 것도..

내 강의 새들은 모두 우리에게 자유를 노래하고 있었어요.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았죠.
아버지는 그걸 알고 있었어요.
다만 듣고 있을뿐..

지평선이 훨씬 멀어졌을 때,
새들은 모두 희망의 길 위로 날아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뒤를 쫓아 우린 온 거예요.
파리로..

 

 

 

2. La Reine De Saba (시바의 여왕)

 

'시바의 여왕'이란, 솔로몬왕의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한 남아라비아의 시바라는 나라의 여왕 바루키스를 가리키는 말이다. 현재의 예멘이 고대 아라비아의 시바왕국의 땅이므로 시바의 여왕은 예멘의 왕일 것이라는 설과,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이 만난 에디오피아가 시바왕국이라는 설이 있다.

이 곡은 프랑스에서 활약하였던 북아프리카 출신의 남성가수 미셀 로랑이 1967년에 작사. 작곡 그리고 레코딩한 것으로 사랑하는 연인을 시바의 여왕에 비유하여 노래한 곡이며, 샹송의 대표적인 명곡이다. 

 

Oui! Qu'elle revienne
Oui! Qu'elle m'entraine
Cette folie qui avait bouleverse ma vie
Je le questionne
Mais il deraisonne
Ce coeur perdu dans l'infini du souvenir

Viens reprendre ton royaume
Toi, la reine de Saba
Reviens me faire l'aumone
D'un petit peu de toi
J'ai essaye de comprendre un autre regard deja
Mais je n'ai pas pu attendre un autre bruit de pas

Dis tu m'ecoutes
Tu es sans doute deja partie
Si loin de tous nos souvenirs
Est-ce ma faute? Est-ce ta faute?
Si malgre moi,
Je ne peux plus vivre sans toi

Viens reprendre ton royaume
Toi, la reine de Saba
Reviens me faire l'aumone
D'un petit peu de toi
Viens reprendre ton royaume
Il attend que tu sois la pour revivre ce royaume
Toi, la reine de Saba

 

그녀가 돌아와 주면 좋겠어요.
날 이끌어 주길 바래요.
나의 인생을 망쳐버린 날 미치게하던 그 행동…….
내 마음은 끝없는 추억에 파묻혀,
아무리 물어 보아도 헛소리를 할 뿐.
 
돌아 와서 그대의 왕국을 재건해주세요.
그대는 나의 시바의 여왕.
돌아와서 나에게 베풀어 주세요.
그대를 조금만…….
나는 다른 시선을 받아 들이려고 애써봤죠.
그러나 다른 발소리를 기다릴 수는 없었죠.
 
들리나요.
의심할 것도 없이
그대는 우리 두사람의 추억으로부터
훨씬 멀리 떨어져 있을 거예요.
내 탓인지. 아니면 그대의 탓인지.
내가 본의는 아니지만
그대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은…….

와서 그대의 왕국을 되찾으세요
그대, 사바의 여왕이여
다시 오셔서 내게
아주 적은 적선이라도 베풀어 주세요
와서 그대의 왕국을 되찾으세요
그대가 이 왕국에서 다시 살기를 

그는 고대하고 있어요 

 

Paul Mauriat 연주

 

 

실비 바르땅(Sylvie Vartan, 1944~   )

 

실비 바르탕은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Love is Blue"와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 등의 히트곡을 불러

한국에서 가장 많은 팬을 확보한 샹송 가수 중 하나로

"파격과 낭만의 여가수"로도 알려져 있다.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8살때 프랑스로 이주한 바르탕은

60년대 영화 "우상을 찾아라"의 주제곡 "La Plus Belle Pour Aller Danser"로

전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며 스타덤에 올라

1970-80년대 전성기를 누리며 대표적인 샹송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환갑을 맞이한 바르탕은 자서전 출간과 함께

신보 "Sylvie"를 발매하고 유럽 프로모션 활동 등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곡으로 꼽히는 "La Maritza"와 "Love is Blue",

"시바의 여왕"(La Reine De Saba)을 비롯해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재해석한 "Caro Mozart" 등이 대표적 히트곡이다.

 

아이돌 스타로 등장해서 프랑스 음악계에서 가장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실비 바르땅'은 프랑스 샹송계의 역사와 함께한 대표 여가수다.

공산체체이던 불가리아를 탈출해서 8살때 프랑스로 망명한

'실비바르땅'은 66살이던 1990년 10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국립극장에서 콘서트를 열면서 불가리아 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실비 바르땅'은 프랑스 가수이지만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나 

눈이 못생겨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미셸 뽈나레프(Michelle Polnareff)'처럼

전통적인 '샹송가수'는 아니고, '프랜치 팝싱어'로 구별해도 무방하다.
'실비 바르땅'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었던 프랜치 팝을 개척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녀는 1963년에 발표한 'Quand Le Film Est Triste'가

각종 인기차트를 석권하면서 일약 젊은 세대의 우상으로 떠오른다. 
무드 가득하고 문학적인 샹송보다는 과감하게 록큰롤을 혼합한 호쾌한 음악,
기존의 여가수들이 보여주던 다소곳하면서도 나긋나긋한 이미지를

과감하게 탈피한 그녀의 모습은 당시 젊은이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와 부합되어 최고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뭇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던
프랑스출신 미남스타 가수인 '조니 할리데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는 그 당시 대단한 화제를 불러모으며 1965년 결혼을 한 후
그 이듬해 여름에 아들 '다빗 할리데이'를 낳았다.
다빗 할리데이는 부모의 음악재능과 빼어난 용모를 그대로 물려받아
현재 인기가수로 맹활약 중이다.

그러나, 이토록 행복한 '실비 바르땅'을 운명의 신이 질투라도 하듯
그녀에게 '안나 게르만'과 흡사한 모진 시련이 다가온다.
1968년, 1970년 두 차례나 겪은 대형 교통사고는

그녀의 가수생명을 위협할 정도였다.
재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예상을 불굴의 의지로 깨뜨린 그녀는
지금  흘러나오는 불후의 명곡 'La Maritza'를 발표한다.

'La Maritza(라 마리짜)'는 불가리아에 있는 '실비 바르땅'의 고향
이스크레츠를 끼고 흐르는 강인데, 불가리아의 릴라 산맥에서 발원해
발칸 반도를 가로질러 흐르는 불가리아를 상징하는 강이다.
따라서 그녀 가족에게 마리짜강은 자유를 그리는 희망의 상징이었는데,
이 노래는 단순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서는 슬픈 노래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라는 가사 속에서

'Sylvie Vartan'이 느껴야 했던 것은 아픈 추억들뿐이었다.

1968년 파리에서 녹음한 이 곡은

흘러온 시간과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채울 길 없는 목마름,

무엇보다도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의 향수와 자유, 그리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등

이런저런 회한들이 얽혀져 있는 내용들이 노래의 주 가사를 이루고 있다.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 부모 손에 이끌려

조국인 불가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망명을 온 후 프랑스인으로 살았지만
한번도 자신이 불가리아인이란 걸 잊지 않았다고 한다.

 

1989년 소련이 붕괴되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멋대로 날뛰던 공산주의 독재자들이 무너지면서 조국 불가리아가 자유화되자

1990년 10월 고향을 떠난 지 38년이 지난 40대후반

중년 나이에 꿈에도 그토록 그리던 조국 불가리아를 찾았다.
동터오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아침에 모국 불가리아에서 가진

'실비 바르땅'의 귀향무대는 가슴이 벅찼고,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기념하는 축제였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국립극장에서의 콘서트에서

파란만장했던 지난 날을 돌아보듯 가사를 음미하며

원숙하고 감회어린 목소리로 이 곡을 노래하였고,
조국의 청중들과 눈물의 회한을 풀면서
"너무나도 오랫동안 기다려온 오늘입니다.

철없던 8살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여러분들을 떠났기에

지금 내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참고 있는지 여러분들은 상상이 안될 겁니다.

이제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다시 그 아름다웠던 유년기를 되찾은 느낌입니다.

똑같은 집들과 풍경들, 어릴 적 내가 놀던 마리짜의 강물도 여전하겠지요.

마리짜는 영원한 나의 강입니다"라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청중들에게 했던 이 말은 그녀의 모든 애환이 다 서려있다.

그녀는 이 곡을 부르는 도중 한없이 눈물을 흘려 공연이 잠시 중단되었다고 하는데..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듯한 그녀의 목소리가 모든 이의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출처 : 박연서원
글쓴이 : 박연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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