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스크랩] [3.23 생장피에드포르]순례길의 시작, 비오는날이라 더욱 근사했던 마을(Saint Jean Pied de Port)

mistyblue 2013. 4. 28. 15:42

 

 

이상하다. 지금 생각해도 우리가 여길 왜 갔는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이미 봄이 왔을거라 생각한 프랑스의 너무 쌀쌀한 날씨에 상처를 받고~

이제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가리라 결심했던 것 같다.

 

정열의 나라 스페인으로 말이다.

그래서 거의 이날의 일정은 포기하고 쭉 내려갔어야 하는데 아쉬운 마음에 아르까숑을 들렸고..

실망을했고~

그리고 또 가던 길을 재촉하다가 왠지 그냥 가긴 좀 아쉬운 거 같아서,

근처에 한군데만 더 들려보자 했던 것 같긴 하다.

가이드북에 정작 동그라미를 쳐둔 건 로카마두르라는 절벽위의 마을이었다.

 

생장피에드포르는 동그라미도 없고 밑줄도 별도 없다.

아마 가던 길에서 어딘가로 새지않고도 들를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던 듯 싶다.

 

우리가 맨 처음 유러피언캠핑이나 론리플래닛보다 의지했던 굴러라유럽 가이드북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인구 1,400 피레네 산지의 Saint-Jean-Pied-de-Port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자체도 아름답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성문 Jacob's gate와 옛 나바르 왕국의 Citadel 등 중요한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Citadel은 오랜 세월동안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곳인데, 피비린내 나던 중세의 요새가 지금은 문법학교로 쓰이는 것을 보면 왠지 묘한 느낌이 든다."

 

딱 요 네줄이었다.

 

근데, 근데 말이다.

우리와 인연이 있어서였을까?

비에 너무나 안 어울리는 모래사막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오래되 성벽으로 둘러쌓여, 이곳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작은 운하를 건너가야 하는 그곳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처럼 나를 신비한 세계로 이끌어주는 느낌이었다.

 

 

 

 

 

부스스 내리는 빗방울과 엷게 피어나는 물안개인지 안개인지 모를 공기의 움직임.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온 마을의 성벽, 내가 무척 좋아하는 유럽 특유의 돌바닥~

특히 난 비오면 반들반들 윤이 나는 이 돌바닥을 정말 사랑한다.

 

블루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얼른 우비를 꺼내입고 사진기를 꺼내들고는~

"야 이거 정말 대박이야~"를 외치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특히 관찰력이 뛰어난 블루는.. 여기 문고리들이 심상치않다며 나에게 알려준다.

으~ 손이라니~ 엄청 큰 죄를 지은 사람의 손을 차가운 쇠로 변하게 해서 매달아둔 것처럼 오싹한 느낌이든다.

 

 

 

 

그러다가 귀여운 조개로 문고리를 달아놓은 앞에 서니 피식 웃음도 난다.

 

 

 

샵마다 진열해놓은 물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와~ 한국에서라면 치즈에 엄청 열광하는 난데..

오히려 외국에 오니 치즈 먹어볼 엄두가 안 나고, 맨날 라면이나 매운 고추장만 먹고싶어지는 이유는 뭘까?

 

블루와 터키로 일주일간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햇반 두개를 돌려 그냥 김치반찬만 가지고 뚝딱 했던 게 생각난다.

정말 우습다. 한국에선 파스타나 치즈, 독일식 햄에 그리 열광해놓고, 막상 외국에 가면 오로지 밥에 얼큰한 국물만 생각나니~

바보같아~ 한국에선 얼큰한 거 실컷 먹고, 외국에선 파스타나 맛있는 빵, 햄, 치즈 실컷 먹으면 좋으련만..

미련한 내 식성은 참 나를 힘들게 한다.

 

생각해보니 아르까숑에서 모래사막을 타넘고, 이곳 생장피에드포르까지고 쭉 굶고 달려왔다.

그래도 배고픈지도 모르겠다.

끼니때가 되면 어디든 맘에 드는 예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르고~

프랑스의 현지인들과 어우러져 맛있는 음식을 드는 여유로운 여행은 아직 우리에겐 좀 사치다.

회사에서 못 받은 월급이 꽤 되는데 꼭 통장으로 넣어주마 약속만 받고 왔는데~

그것도 기약이 없고~ 돈을 펑펑 써댈 수는 없는 입장이다.

 

가끔 이런 생각에 우울해지긴 해도 그러기엔 너무 멋진 곳이다. ^^

춥고 비도 갑자기 많이 와서 쉴 곳을 찾는데,

언제나 그렇듯 작고 오래된 성당이 언제든 들어와도 좋다는 듯 편안하게 우릴 맞아준다.

 

 

안엔 아이들이 그리고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흠, 이런 거 참 좋다. 난 여행객의 입장이지만,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을 얼핏얼핏 엿보는 거 말이다.

그냥 스쳐지나가며 이쁘다. 멋있다 하는 것보다 사람향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서 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거 같다.

 

 

이제 비가 좀 그친 거 같아 나가니 마을의 주위를 빙 돌아 성벽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산보하듯 슬슬 올라갔더니 굉장한 풍경이 또 펼쳐진다.

위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이 마을 뒤로 설산이 저렇게 병풍처럼 펼쳐져있을 줄은 몰랐다.

아, 환상적이야~ 이런게 유럽이지 ㅋㅋ

 

파리에선 느끼지 못했던 자연과 어우러진 소박한 아름다움이 마음을 너그럽게 만들어준다.

 

 

 

 

너무 예뻐서 도저히 발걸음을 못 떼게 만들지만, 이러다간 저녁때 숙소 못잡아서 또 아무데나 비싼데 가야할까봐

발걸음을 돌리는데, 정말 예쁜 레스토랑이 보인다.

지금은 비가 와서 아무도 테라스에 안 나와있지만, 볕 좋은 날이면 맘씨고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눌듯한 곳이다.

 

 

 

오베르쉬르와즈에서도 프랑스의 공기에는 빵을 먹고싶게만드는 마법이 있는 것 같다고 했었다.

이곳을 급히 떠나려하는데 방금 구운 빵냄새가 배를 요동치게 만드는 바람에..

블루와 나는 빵집에 들어가서 먹음직한 바게트 하나를 건네받아 차에서 맛있게 정말 꿀맛같이 즐겼다.

 

 

정말 프랑스의 바게트는 최고다.

아무 빵집에 가서 먹어도, 우리나라에서 먹어본 어떤 바게트보다 더더더 맛있다.

 

그냥 의기소침하게 마무리됐을 하루, 비만 오는 지겹던 프랑스를 작고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평화로움으로 기억하게 해준 작은 마을.

생장드피에드포르였다.

 

뒤에 알게 된 더더 놀라운 사실은 이곳이 산티아고순례길의 제일 시작 혹은 마지막을 장식하는 곳이라는 거였다.

미리 알았더라면 우리도 이곳에서 당장 차를 버리고 순례를 시작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출처 : GreenLady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글쓴이 : greenlad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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