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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짜집기 경주여행 13. 에밀레종, 황금의 왕국 신라, 국립경주박물관의 포르노

mistyblue 2013. 5. 4. 20:20

짜집기 경주여행 13. 에밀레종, 황금의 왕국 신라, 국립경주박물관의 포르노

 

신라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글로 남아있는 서라벌의 참 모습은 어땠을까?

그것을 완전하지는 않지만 실증적인 유물로써 보여주는 곳이 국립경주박물관이다.

전설처럼 쓰여진 에밀레종의 슬픈 이야기도, 신라왕족이나 귀족들의 호화스러웠을 생활상도,

서민들의 삶도 당시에 그들이 썼던 물건들로, 아니면 죽음과 함께 묻혀졌던 물건이든 

이곳 박물관에 오면 직접 대면하면서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이다.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봉덕사종)

 

경주박물관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오른 쪽에 보이는 에밀레종이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1962) 수학여행 당시 경주 박물관은 경주시내에 있었다.

여느 절의 범종각이 그런 것처럼 나무로 만든 종각에 걸려 있었는데

어릴 때의 눈으로 볼 때 엄청나게 큰 종이 걸려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단체 관람시에 타종을 해준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종소리의 장중함과 맥놀이의 긴 지속시간을 아직도 기억하기 때문이다.

1975년 현재의 박물관으로 옮겨서 설치했다.

 그 큰 종을 옮기는 일이 당시의 운송 기술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어서

여러가지들이 에피소드들이 남아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첫 권을 보면 자세하게 실려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종고리를 종각에 다는 일은 더욱 어려운 문제였다.

신라의 금속기술이 현대인들도 따라하지 못할 정도로 앞서 나갔다는 증거가 된다.

내가 다닌 회사가 독일과의 합작회사라 기술문제가 토픽에만 오르면

항상 콧대가 높아지는 독일인들에게 해주는 몇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첫번 째가 1960년대초에 개인소득 80불에 불과했던 최빈국이 어떻게 해서 20,000불이 넘는 나라로 되었는지,

그 다음 정도가 한글과 세종대왕이요, 그 다음은 이순신의 23전 23승이요,

그 다음은 그들이 자랑하는 구텐베르크보다 무려 200년이 앞선 금속활자 기술이요

그 다음이 에밀레종의 종고리와 쇠막대기 이야기이다.

 

에밀레종에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어린 아이의 희생이라는 마음 아픈 전설이 뒤따른다.

종교를 불문하고 신앙의 힘이 가지는 희생과 능력의 교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88년의 사진

 

 

2010년의 사진

 

 

 

 

 

 

신라 금관

 

신라 유물중 가장 화려한 것이 금관이다.

출(出)자 모양의 관에 영락과 곡옥이 달려서 미세한 진동이나 움직임에도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양이나

그 모양의 화려함이 어떤 보물보다도 귀중해 보인다.

 

강돌과 흙을 번갈아 샇아 놓은 수혈식 적석목곽분이라는 신라왕릉의 독특한 구조 때문에

애시당초 도굴꾼들이 도굴의 엄두도 내지 못한 것, 현대에 들어와서 정상적인 발굴을 통해서만

부장품들을 수습할 수 있게 된 것은 신라인들의 선견이 아닌가 생각된다.

신라의 왕릉중에 금관이 최초로 발굴된 것이 일제 때인 1921년의 금관총 발굴이다.

지금은 노서리 고분군과 노동리와의 사이 도로변에 있는 왕릉급 고분인 금관총은 신라 왕릉중에 처음으로

발굴되었는데 그때 까지도 신라의 왕릉에 이런 보물이 묻혀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당시 마을 안의 주막 공사에서 우연히 유물이 발견된 폐무덤에 가까웠던 금관총의 발굴은 

거기에서 나온 유물들로 인해 그 때까지 잠자던 신라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다름 없었던 셈이다.

 금관의 외관 및 내관 뿐 아니라 새날개 모양 관식, 금제 과대(허리띠)와 요대(드리개), 

환두대도,  금제 팔찌, 귀걸이, 기타 다량의  장신구들 등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

금관은 금관총 뿐 아니라 그뒤를 이어 발굴된 금령총, 서봉총, 

그리고 1970년대의 천마총, 황남대총 등 왕릉급의 무덤에서는 모두 출토되었다.

최근 문무왕릉비문에 의해 새로 해석되는 신라 김씨 왕조의 흉노기원설과

금세공 기술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신라인의 금에 대한 애착은 북방 유목민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라고 생각되었던 고대의 알타이적인 샤마니즘 신앙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왕관 자체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목이었고 관식 자체가 새의 날개로 하늘에 연결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2010년 3월, 경주박물관에서는 천마총 금관을 전시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출토된 금관들이 出자가 넷인 금관은 천마총과 금령총 금관이고

금관총, 서봉총, 황남대총의 금관은 出자가 셋인데 그 개수의 차이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알 수 없다.  

 

천마총 금관 - 국보 188호

 

 

  

천마총 금관모 : 국보 제 189호

 

천마총 금제 과대(허리띠) 및 요대(드리개) : 국보 제 190호

 

 

 

 천마총 나비모양 금관식 : 보물 제 617호

 

기타 금 장신구

 

금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신라인들의 금에 대한 집착은 대단한 것 같다.

신라왕릉에서 출토된 금 장신구들은 그 화려함이 상상을 초월하기도 하고

금세공 기술은 당대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우장식 항아리- 신라의 포르노그라피

 

내가 신라인의 포르노를 본 것은 1980년대 중반이었다.

잠실 롯데월드 민속관에서 였는데 토우들이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검회색의  항아리의 한 쪽에

성기가 과장, 확대된 남자가 엎드린 여자의 뒤로 정확히 후배위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모조품이었기에 진품을 보고싶은 마음이 일었었다.

1990년 대 중반에 경주박물관에 있는 진품을 보았다.

미추왕릉지구 출토 국보 제 195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서 요리조리 뜯어보면서 남들은 알지 못하는 사실을 나만 아는 그 즐거움을 아시는가?

 

 

 

 

기타 유물들

 

경주박물관에는 위의 유물 말고도 수많은 유물들이 박물관 애호가와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신라 왕조의 주축이었던 김씨 자체가 흉노족의 후예라는 설이 점점 설득력을 키워가듯이

신라의 문화는 기마민족의 특징을 짙게 보유하고 있다.

위에서 본 황금에 대한 집착, 각종의 마구들, 토기에 나오는 동복 등 유목민의 흔적,

환두대도, 스키타이적인 요소, 수혈식 적석 목곽분의 계통적인 특징 등과

신화에 남아있는 하늘과 알과 말과의 관련성등...

유리문화와 연결시켜 주었을 유목민에 의한 실크로드의 중개역할, 중앙아시아의 뿔잔의 흔적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유물들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유물들의 사진을 여기에 다 올릴 수는 없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는 박물관에서 직접 보는 것이 훨씬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경주 박물관...

신라의 유물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다량 관람이 가능하므로

그 사진들은 다음 기회가 있을 때 별도로 사용할 계획이다.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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