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집기 경주여행 10. 소금강 구역 1.(헌덕,탈해왕릉,표암)
헌덕왕릉
진평왕릉이 그렇듯 헌덕왕릉도 드물게 평지에 단독으로 조성된 왕릉이다.
진평왕릉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서 보문호수와 경주 시내를 잇는 도로를 건너면 북천이 나온다.
이 북천의 북쪽 평지, 깊은 소나무숲에 신라 41대 헌덕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40대 애장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헌덕왕, 김언승.
이미 36대 혜공왕이 반란으로 죽은 이후 신라는 왕권 투쟁과 권력의 암투로 인한
혼란상이 시작되었고 국가의 중심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로마제국 멸망의 시작이 오현제 중의 마지막 황제인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서부터
서서히 시작되어 그 아들 코모두스의 암살, 그리고 군인 황제들의 시대에 이르러
황제권의 매매, 반란, 이민족의 침입등으로 이어져서 결국 멸망했듯이
신라의 멸망도 전성기로 일컬어지는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의 암살로 부터 시작되어
왕족 간의 처절한 권력투쟁이 계속되는 것이다.
41대 헌덕왕의 죽위도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이루어진 것이니
권력의 속성은 동서양 어디나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절대권력도 인간인지라 누구나 가는 길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정한 이치.
육신은 얼마 되지 않는 넓이의 땅에 묻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2007년 8월15일, 보문호수의 콘도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오어사(五魚寺)를 목표로
가는 길에 헌덕왕릉, 탈해왕릉, 표암을 들렀다.
헌덕왕릉의 사진은 그 때의 사진이다.
신라왕릉과 소나무 숲...
헌덕왕릉은 12지신상 호석으로 둘러진 능이지만 12지신상 중 남아 있는 것은 다섯 밖에 없다.
탈해왕릉
신라의 왕성(王姓)은 박, 석, 김씨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탈해왕릉은 석씨 최초의 왕인 4대 석탈해왕의 능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탈해왕(토해라고도 함)은 본래 왜국 동북쪽 1 천리에 있는 다파나국 출생이라고 했다.
왕비가 아이를 임신한 지 7년만에 알을 낳아서 왕이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고 하여 버리라고 했다.
왕비는 이 알을 비단에 싸서 보물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바다에 넣어 떠내려 보내는데
처음에는 금관국 해변에 닿았으나 금관국인들은 이를 괴이하게 여겨 취하지 않았다.
알은 다시 진한의 아진포구에 이르니 해변의 노모가 줄을 당겨 해안으로 끌어올려 궤를 열어보니
어린 아이가 있어서 데려다 길렀더니 자라서 신장이 구척에 이르고 풍모가 수려하고 지식이 남보다 뛰어났다.
석씨라는 성은 처음 궤짝이 와 닿을 때 까치가 따라다닌 것에 연유,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를 떼어버리고
석(昔)을 성으로 삼았다. 그리고 궤짝을 풀고 나왔으므로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했다.
삼국유사에는 탈해왕의 기록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신라 4대 탈해의 기사인데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가락국에 배가 한 척 닿아서 수로왕과 백성들이 북을 치면서 그들을 맞았으나
그 배는 계림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로 달아났다.
아진의선이라는 할머니가 있어 이 배를 끌어당기니 까치들이 모여들었다.
배속에 있는 궤짝에서 사내아이 한 명과 칠보의 보물들이 가득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왜국 동북쪽 1천리 떨어진 곳에 있는 용성국(龍城國, 정명국 또는 완하국이라고도 함))의 사람이라고 했다.
부왕 함달파가 적녀국의 왕녀를 맞아 왕비로 삼아서 7년 만에 알을 낳았는데 대왕이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하여
칠보와 노비들과 함께 궤짝에 넣어 배에 실어 띄어 보냈눈데 붉은 용의 호위로 이곳에 도착했다고 했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기록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있다.
완하국 함달왕의 부인이 알을 낳아서 이름을 탈해라 했다.
탈해가 바다를 건너 가락국에 왔다가 김수로왕과 왕위를 놓고 술법으로 겨룬다..
먼저 탈해가 매로 변하니 수로는 독수리로 변한다. 수로의 승리.
다시 탈해는 참새로, 수로는 새매로 변하니 수로가 재차 승리한다.
탈해가 깨끗하게 항복하고 물러가서 가는 곳이 계림의 땅이다.
이후 탈해는 자라서 속임수로 호공의 땅을 빼앗고 결국 2대 남해왕의 사위가 되었다가
62세의 나이에 임금까지 된다.
탈해왕릉에 처음 와본 것은 1962년 5월, 국민학교 수학여행 시절이다.
그후 여러 번 지나가면서 들렀으나 사진으로 남긴 것은 1988년과 2007년.
(1988년의 사진)
아래 2007년 8월 15일의 사진.
1988년의 안내판과 2007년의 안내판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표암(瓢巖)
탈해왕릉과 바로 이웃한 곳에 표암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표암은 6부 중 알천 양산촌의 촌장으로서 경주 이씨의 시조가 되는 이알평공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라 하여 경주 이씨의 성지로 여겨지는 곳이다.
6부의 촌장들과 자제들은 알천언덕(표암으로 추정)에 모여 왕을 세우기로 의논하는데
이것이 화백 제도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다.
1988년의 사진
2007년의 사진.
계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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