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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졸작열전'

‘겸재는… 조선중화사상에 따라… 조선고유색을 현양한 진경문화를 주도한… 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다.’ 겸재 정선(1676~1759)을 향한 극찬이다. 심지어 ‘민족적 자존심을 지킨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도 꼽힌다. 무오류의 위인전을 읽는 듯하다. 그러나 지나친 신봉은 외려 겸재의 진정한 가치를 흐리게 하지는 않을까. 장진성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의 논문 ‘정선의 그림 수요 대응 및 작화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겸재는 그야말로 쓸어내리듯 휘두른 빠른 붓질로 단번에 그리는 ‘일필휘쇄(一筆揮灑)’ 필법으로 유명하다. 겸재의 절친인 이병연은 “내 친구 정선은 그림 그리는 흥취가 날 때 붓이 없으면 내 손에서 붓을 빼앗아… 쓸어내리듯 휘두른 붓질이 더욱 방자해졌다”고 평했다. 문인 ..

일왕이 언급했던 백제 순타태자는 누구?…무령왕릉 앞 6호분 주인공?

‘실종된 29호분의 정체를 찾아라.’ 197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역사적인 고고학 발견이 있었죠. 고분 속 지석에 ‘무덤 주인공이 나(무령왕)요’하고 새겨넣은 고분, 즉 ‘백제 무령왕릉’의 현현이었습니다. 이 무령왕릉 발견과 함께 기존의 1~6호분까지 7기의 무덤이 말끔히 보존·정비되었는데요. 그러나 ‘무령왕릉의 화려한 등장’과 함께 거꾸로 기억에서조차 사라져버린 고분이 한 기 있었습니다. 무령왕릉-6호분의 앞쪽에 존재했던 29호분입니다. 1933년 우연히 발견된 고분인데요. 공주 무령왕릉 및 왕릉원(옛 송산리고분군) 중에 행방이 묘연했던 29호분이 발굴되면서 무령왕릉을 중심으로 한 백제 왕릉의 전모가 드러났다. 왕릉원 윗 부분은 공주 천도를 단행한 문주왕과 그 아들인 삼근왕계가, 밑에는 무령왕을 ..

일본이 가져간 ‘백제의 미소’ 불상···해방 이후 첫 국내 전시

금동 관음보살 입상, 백제, 7세기 중반, 높이 26.7cm, 개인 소장. 호암미술관 제공 해방 후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백제의 미소’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이 한국 관람객과 만난다. 그동안 사진으로만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백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이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은 오는 27일 새로 선보이는 불교미술 전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에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을 전시한다. 개막에 앞서 25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실제로 마주한 금동 관음보살 입상은 과연 ‘백제의 미소’라 할 만했다. 7세기 중반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은 26.7㎝ 높이로 아담한 크기이지만, 그 미소와 자태의 아름다움은 빼어났다. 머리에 삼면보관을 쓰고, 왼손에 정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