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반역 그리고 재즈'을 읽고
저자: 에릭 홉스봄 / 글: 강 미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특이했던 점은 책 제목이었다. 에릭 홉스봄은 원래 이 책에 'Uncommon People'이란 제목을 붙였다. 에릭 홉스봄은 이 책에서 ‘남자든 여자든 그런 사람들이 개인적으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집단으로서는 역사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라고 말하며, ‘그들의 생각과 실천이 변화를 일궈내며 그것은 문화와 역사의 양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실제로 그래왔으며, 특히 20세기에는 더욱 그러했다고 얘기하고 있다.
이 책이 한국말로 번역되었을 때, ‘저항’과 ‘반역’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여기에 ‘재즈’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책을 읽기 전에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한 구성을 보면, 갑자기 3부에서 ‘현대사’가 나온다. 그것도 ‘베트남전쟁’이 나와서 좀 혼동스러웠다. 아무래도 책 내용 자체가 에릭 홉스봄이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소논문과 에세이,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처음 책을 접하는 독자를 위해서 내용 순서나 구성은 좀 다시 새롭게 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이 책은 사회과학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해하기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학생들에게 음악이 사회 변혁에 어떤 역활을 해왔는가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서는 많은 이해와 도움이 되었다. 특히 앞부분부터 등장하는 노동계급과 농민에 대한 글들은 영국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해당 분야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요구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라서 읽기에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여기서 다뤄지는 인물 자체가 근대 국가의 관공서가 아니면 그 이름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모르는 내용 또한 많을 수 있으나 보편적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홉스봄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우리가 통상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사실은 역사를 만들고 변화시켜 온 역사의 주역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다양한 주제를 관통하고 있는 것도 이들 이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단하지만 숭고한 삶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지만 이 책과 비슷한 분위기를 가진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일제 말기 ‘부민관 폭파사건’을 일으켰던 장본인인 ‘조문기’외 7명의 사람들의 삶을 엮은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의 삶을 통해 꼭 이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소수의 집권층이 아니라 그것을 떠받들고 있는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었다.
‘저항과 반역 그리고 재즈’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사회가 잘 돌아가고 어떠한 난관에 부딪히지 않는 이상 민중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에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회적 의식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가 혼란해지고 소위 ‘지배층’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탄압이 심해지면 민중은 역사의 주체로서 그들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홉스봄 또한 이러한 눈으로 민중을 바라보았다. 그에 따르면, 급진주의 전통의 뿌리에서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중심엔 언제나 민중이 서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민중은 관념적인 개념으로서의 민중, 일방적으로 억압당하고 고통 받는 피착취자로서의 민중이 아니다. 그들은 당대의 공기 속에서 나고 자라 시대를 가장 민감하게 느끼고 주도해 간 사람들이었으며, 그들 자신의 사회의 부조리에 대항하여 일어서는 실천의 주체였다. 개인으로서의 그들은 때론 어리석기도 하고 통치자의 폭압에 납작 엎드리기도 하며 힘없이 무리 속에 묻혀 생을 마치기도 했다.
그러나 톰 페인이 그러했듯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그들은 여느 영웅 못지않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고, 제화공들처럼 오랫동안 급진주의자라는 놀라운 평을 받으며 한 마을의 정치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도 했으며, 베트남전의 베트콩들처럼 빈약한 무장만으로 선진 무기 앞에서 예상치 못한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홉스봄은 바로 이 민중들, 즉 각자의 삶 속에선 결코 하찮게 여겨질 수 없는 주체이나 역사 속에서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정당한 자리를 찾지 못한 이 평범한 사람들의 자리를 찾아주고자 한 것이다.
민중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정신과 삶의 고단함을 재즈라는 음악적인 요소에서 찾아다는 것에서 재즈에는 민중의 스러지지 않으려는 삶에 대한 치열성이 뭍어있다고 볼 수 있다. 재즈는 그냥 음악이 아니다. 재즈를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 재즈에 결코 스러지지 않으려는 속박받는 민중의 혼이 함께 들어있음을 그들의 정서를 함께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 재즈는 그래서 그냥 음악일뿐이 아니다.
재즈에 대한 홉스봄의 견해를 우리 사회에 적응해 보면 참 미진한 점이 많다. 아무래도 서양에 비해 민주주의가 정착된 시기가 짧고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가 발생한 것이 아닌 남의 것을 가져다가 이식제도다 보니 5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민중이 힘을 발휘했던 얘를 찾아보면 대표적으로 ‘4․19의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리게 된 것도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그전까지만 해도 ‘4․19학생운동’ 또는 ‘4․19폭동’이라는 좋지 않은 이름으로 불리었다. 또한 TV같은 방송매체에서도 예전에 이러한 민중이나 학생들이 벌인 운동에 대해서 다시 조사하고 방송을 내보내는 것에 대해서 꺼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이 21세기 들어 그러한 모습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고 민중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고 노력하는 과정이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는 홉스봄은 ‘재즈’를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근간을 두면서 주류 예술로 등장한 아주 드문 사례로 들고 있다. 이것을 우리 현실이 비추어 보았을 때 딱 떨어지게 맞는 것은 없지만 대강 ‘판소리’나 ‘구전민요’정도를 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우리의 민중운동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판소리나 구전민요에 대한 생각도 단순히 ‘음악사’적인 면이 아닌 민중운동과 결부시켜 본다면 상당히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글을 카페에 올리는 것은 재즈가 여유있는 사람들의 문화적 유희 정도로만 이해되거나, 음악하는 사람들에게 장식같은 정도로 활용되어질 것이 아닌 재즈가 지닌 시민성과 역사 속에는 보편적 인간 가치가 함께 녹아있음을 공감했으면 하는 바램으로 이 글을 올려본다. (변산바람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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