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타 글과 자료들 496

1500년된 블랙박스 열렸다, 백제 비밀 담긴 무령왕 황금무덤

[무령왕릉 발굴 50년, 역사를 바꾸다] ⓵ 무령왕릉 출토 유물 중 왕의 금제관식(관 꾸미개).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 무령왕릉 50년, 졸속 발굴이 문화재과학 초석 되다 「 “이 무덤은 백제 사마왕과 왕비의 무덤입니다.” 1971년 7월 8일 흥분을 억누르며 김원룡 발굴단장(당시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말했다. 벽돌로 덮어 쌓은 아치형 무덤 입구 한쪽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직후였다. 벌떼처럼 둘러싼 기자들이 “사마왕이 누구냐”고 물었다. 한국 역대 왕조 연표를 들어 확인시켜준 공식 시호는 백제 25대 무령왕. 521년 ‘갱위강국(更爲强國, 다시 강국이 되다)’을 선포한 백제 중흥의 군주 무령왕의 무덤이 약 1500년 만에 침묵을 깬 순간이었다. 2021년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이자 무령왕의 갱위강국 선..

102세 김형석의 자녀교육법 "아이에겐 딱 이것만 주면 된다"

[백성호의 현문우답] 다들 고민입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야 하나.”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준선 삼습니다. 거기에 맞추라고 자식에게 요구합니다. 왜냐고요? 나한테는 그게 ‘정답’으로 보이니까요. 그게 ‘전부’로 보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정말 정답일까요? 기성 세대는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암기식 교육을 받으며 컸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정답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 혹은 어린 세대는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세대입니다. 여기서 간격이 생기더군요. 부모가 받았던 교육 방식과 자식이 받아야 할 교육 방식. 둘이 너무 다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최재천 교수에 이어 두 번째 편입니다. ‘100..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용머리 장식..백제 금동신발 보물 된다

5세기 백제 금동신발 두 건 보물 지정 예고 삼국시대 신발 유물로는 처음 전남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문화재청 하늘로 날아오를 듯 솟아있는 발등의 용(龍)머리 장식, 정교하게 투각한 인면조(人面鳥·사람 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상상의 동물)와 용, 연꽃무늬···. 백제 금속 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5세기 금동신발 두 건이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과 전남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 두 건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며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라고 16일 밝혔다. 삼국시대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보물로 상당수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는 것은 처음이다. 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에..

어부들의 개밥그릇·재떨이로 '천덕꾸러기'.. 700년 만에 보물로 깨어난 침몰선 도자기

1970년대 어부 그물에 도자기 자주 걸려 당시 중요성 몰라 다시 바다에 던져 버려 1976년 도굴꾼 유물 팔려다 존재 알려져 수중발굴 경험 없어 해군 등과 합동조사 세계 수중고고학 사상 대규모 유물 나와 금속품·도자기 등 2만 4000여점 찾아내 목간 글씨 연구 결과 원나라 국적 밝혀져 당시 항로·유물 추정… 고려 거쳐 日향한 듯 신안보물선 14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실증 신안보물선은 700년 가까이 물속에 있다가 세상 밖으로 나와 13~14세기 생활상을 알려줬다. 전남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에 신안보물선을 복원해 전시해 놨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1970년대 중반 보물선 신드롬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발굴된 신안보물선에서 값진 고려청자와 송·원대 도자기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

김형석 "100년 살아보니 알겠다, 절대 행복할수 없는 두 부류"

#풍경1 김형석(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올해 102세가 됐습니다. 다들 ‘100세 시대’라지만, 지금 100세를 넘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소 조심스러웠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다 연세가 있으셔서 ‘혹시라도’ 싶어 인터뷰 자리가 걱정되더군요. 이달 초 커피숍에서 만난 김 교수는 의외로 의연했습니다. 뭐랄까요. 1세기를 송두리째 관통한 사람의 ‘굵직한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와 함께 말입니다. 지난 인터뷰에서는 ‘이 시대의 진보와 보수’를 다루었습니다. 이번에는 그에게 ‘행복’이란 두 글자를 물었습니다. 모든 이의 삶에서 화두가 되는 키워드이니까요. ‘100년 넘게 살아봤더니 다른 게 행복이 아니더라. 바로 이게 행복이더라.’ 그런 식의 답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풍경..

110년 떠돈 국보 탑이 돌아온다..기지개 켜는 천년 절터

원주 부론면 폐사지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원주 부론면 법천사지를 지키고 있다. 1911년 일본인에 의해 이곳에서 반출된 국보 지광국사탑이 떠돌이 생활 110년 만에 돌아올 예정이어서 텅 빈 절터가 쓸쓸하지만은 않다. 이름 한번 거창하다. 원주 부론면(富論面)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부를 논하는 고을’이다. 남한강과 섬강이 합류하는 지점엔 이미 고려시대에 나라의 세곡을 소송하고 보관하는 조창인 흥원창이 설치돼 경제활동의 요지였다. 여러 지역의 물자가 모이고 사람이 왕래하니 새로운 소식을 주고받는 장이 펼쳐졌고, 정치와 경제에 풍부한 식견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니 자연히 공론의 장이었다. 돈과 사람만 몰린 것이 아니라 당시 국가의 지도 이념이었던 불교 사원도 덩달아 번창했다. 나라의 스승이 될 만한 승..

26점이나 국가 '보물'인 안중근 글씨..감쪽같이 사라진 청와대 유묵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경향신문]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 26점. 보물 569-1호부터 26호까지 지정됐다. (사진 외 맨왼쪽부터 1~26호) 안중근 의사는 사형언도부터 집행때까지 40여일간 200여 점의 휘호를 집중적으로 썼다.|안중근의사기념관 제공 “일전에 부탁한 글씨를 지금 씁시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9시, 사형 집행장으로 나가기 직전 안중근 의사는 호송관 치바 도시치(千葉十七) 상등병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했다. 치바는 재판을 받던 안의사를 법정~감방 사이를 호송해온 헌병이었다. 얼마 전 안의사에게 “휘호 한 점을 받고 싶다”고 요청한 바 있었다. 그러나 사형집행 당일까지 받지 못하고 있어서 체념하고 있었다. 보물(제569호)로 지정된 26점의 안중근 유묵을 1~26호까지 나열한 모습이다...

'송나라 제일의 문장가' 소동파가 925년 전 쓴 친필 詩 최초 공개

백수산불적사유기, 성균관대박물관서 5일간 선봬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가 1095년 백수산 불적사를 유람하고 친필로 쓴 ‘백수산불적사유기’. 가로 3.6m, 세로 0.5m. 행서 130자(字)로 구성된 이 작품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성균관대 박물관 중국 송나라 문인 소동파(蘇東坡·1037~1101)의 친필 작품이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성균관대 박물관은 “서예가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이 소장했던 소동파 진적(眞跡) ‘백수산불적사유기(白水山佛跡寺遊記)’를 18일 개막하는 기획전 ‘파두완벽(坡肚阮癖)’에서 5일간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1095년 3월 소동파가 현재 광둥성 후이저우시(惠州市)에 있는 백수산 불적사를 유람하고 쓴 시다. “온천에서 목욕하고 폭포 아래서 바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