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타 글과 자료들 496

무덤속 한줄기 빛에 반사된 하얀 물체..백제 최고의 명품구두였네

[경향신문] 2009년 9월 전북 고창 봉덕리 1호분을 조사중이던 발굴단이 1호분 정상부에서 도굴의 화를 피한 구덩식 돌방무덤을 확인했다. 돌 틈 사이로 디지털카메라로 찍어보자 한줄기 빛이 반사된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1550년전 무덤주인공의 발에 신긴 금동신발이었다.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제공 “이건 제사를 지냈던 흔적 같은데….” 2009년 9월 어느 날 전북 고창 봉덕리 고분을 발굴 중이던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조사단이 1호분의 정상부에서 심상치 않은 유구를 확인했다. 봉덕리 고분은 자연구릉을 깎아 시차를 두고 여러 기의 무덤을 조성한 이른바 분구묘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약한 지방세력의 선산이라 할 수 있다. 이에 고창군은 2008년부터 3억원의 예산을 들여 봉덕리 1호분의 정비보존..

관리에, 선장에, 홍어장수까지..'조선판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들

1819년 1월 강원 평해(현 경북 울진)에서 출항한 선박이 일본 돗토리번에 표착해서 9개월만에 귀환했다. 이 그림은 돗토리번에 표착한 조선인 12명을 그린 초상화이다. 담뱃대를 물고 있는 안의기(53)를 중심으로 권인택(52), 김삼이(60), 안택이(43), 전성철(32), 김일손(50), 안용태(39), 심정손(40), 안용택(38), 이동백(32), 최오복(22), 이덕수(43) 등의 이름과 나이가 쓰여져 있다. 피부색과 마마를 앓은 자국, 옷주름, 담뱃대, 부채 등 소품의 특징묘사가 뛰어나다. 그림 윗부분에 대문짝만 하게 흘림체로 쓴 한글글씨가 있다. |서예박물관 제공 지난 2월초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의 특별전(‘ㄱ의 순간’)을 보던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이 한 점 있었다. ‘조선인일본표..

정도전이 서울 재앙을 막기 위해 만든 9가지 풍수 비책

정도전이 서울 재앙을 막기 위해 만든 9가지 풍수 비책 [김기훈의 天地人] 조훈철 문화재 작가 ②/③ 조선시대 한양 도성 건축의 책임자였던 정도전./경기도 문화재 이해법② :풍수를 알아야 한다 조씨가 우리 문화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한 두번째 관점, 풍수(風水)에 관해 질문을 했다. ―요즘 세대는 풍수라고 하면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풍수를 미신으로 만든 것은 일제 강점기 시대에 일본인들이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측면이 가장 크고 심각하다. 일본인들은 조선을 영구적으로 합방하려면 조선인의 민족정신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민족 정신을 고양하는 중심적인 정신 코드를 조선어, 역사, 그리고 풍수로 파악했다. 그래서 풍수 현장을 찾아서 없애면 조선인들을 통치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풍수를..

한국도 '약탈문화재 보유국'이지만..오타니 유물 1500여점 반환해야 하나

[경향신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해외에 흩어진 한국문화재의 환수를 추진하고, 또한 제대로 관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문화재청 산하기관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재단의 홈페이지 화면을 보면 ‘193136’이라는 숫자가 떠있습니다. 이것은 22개국에 흩어져있는 한국 문화재의 숫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숱한 문화유산을 빼앗긴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미이자,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다짐과 각오를 담았을 것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중앙아시아 유물 중 종교회화 작품들. ① 투르판 아스타나에서 출토된 ‘창조신 복희와 여와도’ ②투르판 베제클리크 제15굴에서 뜯어낸 서원화. 갑옷을 입은 2명의 인물이 공양물이 담긴 쟁반을 들..

한반도서 가장 큰 고대 무덤, 열자마자 덮은 까닭은..

장고봉 고분 둘러싸고 고고학계 술렁 일본 고분 닮은 얼개·제사 흔적 논란 "추가 발굴 뒤 일반 공개" 다시 묻어 무덤 주인은 백제 통제 받은 왜인? 일 우익 임나일본부설 근거 삼을라 우려 최근 발굴 조사된 전남 해남군 북일면 방산리 장고봉 고분 내부 돌방(석실)의 모습. 주검을 놓는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현문이 정면에 보이고 납작한 판석 여러 개를 놓은 바닥면과 깬돌을 정연하게 쌓은 돌방의 벽체가 보인다. 1990년대까지 두 차례 도굴당해 내부 유물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고대 단일 무덤이 새해 벽두 마침내 열렸다. 고고학자들은 5~6세기 일본 고분과 판에 박은 듯한 무덤 얼개에 놀라워했고 곧장 흙에 덮여 다시 묻힌 것에 허탈해했다. 1월 국토 최남단 해남에서 들려온 무덤 발굴과 뒤이..

마을 앞 '선돌', 이끼 벗겨보니 '제2의 광개토대왕비'였네

[경향신문] “어? 이건 ‘국토(國土)’네, 이건 ‘토내(土內)’, 이건 ‘대(大)이고….’ 1979년 2월 24일 향토연구모임인 예성동호회원들은 충북 중원군(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우뚝 서있던 비석에서 예사롭지 않은 명문을 읽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에서 처음 발견된 고구려비석의 역사적인 발견 순간이었습니다. 1979년 2월24일 충북 충주의 향토답사모임인 예성동호회 회원들이 중원군(현 충주시)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 서있던 비석에서 옛 글자들을 읽어내고 있다. 한반도에서 유일한 고구려 비석을 발견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유창종·장준식씨 제공 예성동호회는 1978년 9월 당시 유창종 충주지청 검사(현 유금와당박물관장)와 장준식 충주 북여중 교사(전 충청대 교수) 등이 결성한 답사..

"돈 드릴 테니 제발 집 좀 가져가세요." [서영아의 100세 카페]

부동산은 재산 아닌 부채, 일본에선 '부동산(負動産)' 시대 초고령화·인구 감소..한국 부동산도 일본 따라갈 것인가 “빈 집, 10만 엔(약 104만 원)에 사 봤습니다.” 일본 유튜브에는 이런 제목의 영상들이 적잖이 올라온다. 노인들이 살다가 떠났음직한 지방의 수십 년 된 구옥(舊屋)들이 10만 엔, 20만 엔에 거래된다. 가재도구가 그대로 남아있는 집들도 적지 않다. 집을 산 구매자가 유튜브에 맨 먼저 올리는 영상은 ‘보물찾기’다. 빈 집을 탐험하며 상태를 살피고, 혹시라도 남아 있을 골동품이나 귀중품도 찾아본다. 이를 테면 100년 된 집에서 강아지 밥그릇으로 사용하던 그릇이 진귀한 골동품이었다는 식의 ‘대박 스토리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빈집, 20만엔에 사봤습니다‘ 류의 유튜브 영상들. / 유..

물웅덩이 속 금동대향로는 백제멸망 순간의 증거였다 [이기환의 Hi-story]

[경향신문] (발견 당시에 일본애들이 너무나 극심하게 질투심들이 폭발했고 약이 오를대로 오르고 미칠정도로 배가 아프면서 약이 오를대로 오른 나머지 이 향로를 가리켜 백제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든 것이라고 억지 주장들 했었고.....) 1993년 10월26일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에서 이색적인 행사가 열립니다. 일본 규슈(九州) 미야자키현(宮崎縣) 난고손(南鄕村) 주민들이 이곳을 찾아와 제사를 지낸 겁니다. 뜬금없죠. 왜 남의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그것도 누구를 위해 제사를 지낸단 말입니까. 1993년 12월12일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물구덩이에서 확인된 금동대향로. 백제멸망의 순간을 증언해주고 있다.|국립부여박물관 제공 ■일본 난고손 주민들의 고유제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