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타 글과 자료들 496

도굴꾼은 상상도 못했다..목관 밑 '보물상자'에 담긴 2100년전의 삶[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988년 경남 창원 다호리 논바닥에서 발견된 기원전 1세기 무렵의 목관묘(덧널무덤). 구유형의 참나무 목관을 들어내자 밑바닥에 ‘작은 구덩이(요갱·腰坑)’가 보였고, 그 안에 온갖 부장품을 담은 ‘대나무 바구니’가 노출되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다호리 일대의 도굴이 말도 못합니다. 심각합니다.” 1988년 1월 국립진주박물관이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심상치않은 제보 한 건을 올린다. 급보를 받고 달려간 이는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전 문화재청장)이었다. 과연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현장이었다. 도굴꾼의 탐침봉 흔적이 사방팔방에서 확인됐다. 봉분이나 그 흔적이 남아있는 곳도 아닌 논밭이었는데도 그랬다. 실제 도굴이 자행된 구덩이가 논밭 일대에서만 40~50곳이나 보였다. 구릉 위까지 범위를 ..

리어카 바닥에 깔렸던 하피첩, 7억5000만 원에 낙찰

[명작의 비밀] ● 아들에겐 하피첩, 딸에겐 매조도 ● 아들, 딸에게 남긴 다산의 애틋한 필치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이 전남 강진 유배 시절에 쓴 두 편의 글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4월 28일~8월 28일 '어느 수집가의 초대-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을 열었다. 그 가운데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다산 정약용이 전합니다'라는 코너가 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이 강진 유배 시절에 쓴 두 편의 글 정효자전(鄭孝子傳)'과 '정부인전(鄭婦人傳)'을 전시한 코너다. 이번 전시는 이건희 회장이 2021년 4월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여 점 가운데 355점을 선보이는 자리. 유명한 ..

장자 - 변론의 상대를 잃어버렸도다

중국 전국시대의 송나라 철학자. 산문가. 제자백가 중 도가 사상의 중심인물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맹자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것으로 전하나 정확한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천지 만물의 근원을 도라고 보았고,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양혜왕의 재상을 지낸 혜시와 우정이 두터웠고, 그와 변론을 즐겼다. 혜시가 죽은 후에는 변론의 상대를 잃었다며 한탄했다. 10만여 자로 쓰인 그의 저서 《장자》는 우화 중심으로 쉽게 쓰였고, 도가의 경전이 되었다. 그중 장자가 스스로 나비가 되어 노닐다가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는,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나비와 장주〉의 예화가 유명하다. 장자 ⓒ 평단문화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아내의 주..

소크라테스 - Socrates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아테네 시민. 문답을 통해 사람의 무지를 깨닫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소피스트로 인해 혼란해진 아테네에는 새로운 스승이 절실히 필요했는데, 그가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그러나 그를 시기하던 자들은 소크라테스가 신을 모독하고 청년을 타락시켰다며 사형에 처했다. 도망치라는 주변 사람의 권유에도 '악법도 법이다'며 독배를 마신다. 소크라테스의 별명은 '아테네의 등에'였다. 소나 말 등의 피를 빨아먹는 등에가 끊임없이 소를 괴롭혀서 움직이게 만드는 것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살찌고 게을러빠진 아테네인들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도록 귀찮게 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악처의 대명사 크산티페가 없었다면 그는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

플라톤Plato - 철학자가 왕이 되든지 왕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테네의 귀족.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아카데메이아의 설립자. 아테네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정치가의 길을 예약해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를 알게 되어 철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육체나 물질보다 영혼과 정신을 존중하는 피타고라스학파와 소크라테스의 관념론적 경향을 발전시켜 영육이원론의 입장을 취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 철학에 대립하는 거대한 관념론 철학을 창시했다. 그의 사상 중 이데아론과 상기설이 가장 유명하다. 시라쿠사의 참주 디오니시우스 1세에게 전제군주를 비난하는 말을 하여 노예시장에 팔리기도 했다. 철인왕 사상을 주장했으며, 개인보다는 국가를 강조하여 비판을 받기도 했다. 플라톤 ⓒ 평단문화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

노자 - 자기주장을 함부로 내세우지 마라

춘추시대의 사상가. 도가와 도교의 시조로 알려져 있다. 노자의 생존을 공자보다 100년 후로 보는 설도 있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설도 있다. 60여 년 만에 태어났고, 태어나자마자 말을 해 비범한 출생으로 유명하다. 그뿐 아니라 160세에서 260세가 넘도록 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재능을 숨겨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쓴 것으로 전하는데, 그 때문인지 위대한 사상가들은 많은 제자를 키웠지만 노자는 제자가 없다. 그 영향으로 그의 사상은 훗날 왜곡되어 알려졌다. 간결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을 담은 《도덕경》은 노자가 자취를 감추기 전 윤희의 간청으로 쓰여진 것으로 5,000자의 글 속에 무위의 다스림과 무위의 처세훈을 담고 있다. 노자 ⓒ 평단문화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안평대군 작품은 사대부의 로망

“안평대군(1418~1453)의 글씨가 자연미를 방불케 하니 불세출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동방에 서도를 일으켰고… 중국 조정의 선비들이 또한 글씨 한 장씩만 얻어도 가첩을 만들어 보배로 사랑하고 모방하여 비교하려고….” 조선전기의 문인 최항(1409∼1474)은 시문집 에서 안평대군(이용)의 글씨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구구절절 묘사했다. 허언이 아니었다. 1450년(세종 32년) 명나라 사신인 예겸과 사마순이 조선을 방문했을 때 안평대군이 쓴 현판의 두 글자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 글씨는 보통 솜씨가 아니다. 이 사람을 만나보고 싶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안평대군의 진적으로 알려진 . 국보238호로 지정됐다. A4용지보다 작은 소품이지만 진적임을 알려주는 비해당(안평대군의 호) 낙관과 ..